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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말

2017.02.27 12:23

목향 Views:293

 

3월의 말

鄭 木 日

 

3월은 땅 속에서 꽹과리, 날라리, 북소리가 들리고 징소리가 울려오는 듯하다. 굳게 닫힌 침묵의 문을 열고 누가 지금 어디서 오는가. 싱그럽고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꽃냄새로 다가오는가. 3월은 기다림 끝에 맞는 임이다.

일 년의 시작은 1월이지만 계절의 시발은 3월부터이다. 봄이 시작되고, 만물이 기지개를 켜고 가슴을 펴고 싶은 달이다.

3월은 천지개벽의 모습을 보여주는 달이다. 북풍과 한설(寒雪)로 몸을 떨게 하던 바람은 어머니의 표정처럼 유순해 지고, 얼어붙었던 땅과 개울이 풀리고 있다. 동면(冬眠)에서 깨어나 눈을 비비며 일어나는 나무들-. 잎눈을 맺고 초록빛 꿈을 피우려는 가지들-. 얼음을 뚫고 눈 속에서 돋아나는 풀들-.

3월은 아무리 억압하려 해도, 막으려 해도 오고야 만다. 해동기(解冬期)를 맞아 나팔을 불며 북을 치며 환한 햇살 속으로 생명의 빛깔과 향기로 우리 곁으로 온다. 이미 설이 지나고 한 해가 시작되었지만, 한 해의 새 출발이란 느낌을 가지는 것은, 3월이다. 우리 땅에 봄이 오고 이를 눈으로 확인하는 데서 첫 출발을 실감하게 된다. 봄은 새롭게 시작하는 출발선이다. 겨울의 시련과 고난의 기억을 지우고 초목처럼 다시 깨어난다는 것은 얼마나 은혜로운 일인가.

 

빗방울 하나씩으로 가지에 꽃눈이 되고 잎눈이 되고 싶어.

그리운 말, 설레는 말로, 네 굳은 가지와 마음속으로 푸른 수액이 되어 흐르고 싶은 걸.

사납게 울부짖던 바람에도 꿈쩍도 않던 나무들에게 생명의 음표들을 달아 주고 싶어.

차가운 마음을 풀어 주고 목과 겨드랑이에 스며들어 간지럼을 태울 거야.

 

툭툭 깨어나 잎눈이 되고 꽃눈이 되는 생명의 말.

새롭게 피어나는 말, 감동으로 젖어 버리는 말.

생명의 향유를 가져와 언 몸에 뿌리고 쓰다듬어 줘야지.

방울방울 꽃눈이 되고 잎눈이 되어 산과 들판을 물들이고 싶어.

졸작 ‘3월 봄비일부

 

3월은 기다림과 마중의 달인가보다. 임이 오시지 않는다 해도, 봄은 고운님이다. 어여쁘고 향기롭고 눈부신 임이다. 3월엔 기다리던 임이 오시는 듯 발자국 소리가 들릴 듯하다. 생명이 탄생하는 거룩하고도 아름다운 순간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겨울 동안 잠잠히 지내던 새들이 새로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고, 얼어붙어 침묵하던 도랑이 졸졸 소리를 낸다. 죽은 듯 거무죽죽한 나뭇가지에서 움들이 솟아나 잎눈과 꽃눈을 만들어 낸다. 세상을 변혁시키는 초록 혁명이 소리 없이 진행되고 있다. 3월은 눈 깜짝할 사이도 없이 스쳐가는 생명의 대변혁이다.

3월은 햇살도 포근해졌지만, 아직도 꽃샘추위가 살갗을 파고든다. 3월이 반가운 것은 겨우내 보지 못했던 꽃을 피어내는 계절이 왔음을 선언하는 달이기 때문이다. 봄의 전령사는 설중매(雪中梅)이다. 이어 한반도 남쪽에 산수유꽃이 피어난다. 3월의 본색은 꽃소식을 전하는 계절이다. 봄철에 잠깐 피어난 꽃이 반갑고 귀한 것은 오래 동안 꽃을 보지 못한 채 기다림 속에 맞는 귀빈(貴賓)이기 때문이다. 꽃이 흔한 5월에서 여름까지 꽃철에 보는 것과는 다른 감회를 갖는다.

매화가 귀한 것은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꽃이기 때문이고, 제일 먼저 봄을 맞이하기 위해 설한풍(雪寒風)을 이겨낸 인내와 기상이 고결하기 때문이다.

산수유꽃은 한 송이씩의 어여쁨으로 자태와 향기를 뽐내려 하지 않는다. 분명 꽃이지만, 갓 피어난 잎들이 아닌가 싶게 나무 전체가 연둣빛으로 물들어 있다. 산수유꽃은 마침내 봄이 왔음을 알리는 편지다.

3월은 가까운 이들에게 봄이 왔음을 알리는 편지를 보내는 달이다. 3월부터 남녘에서 시작하여 차차 북상(北上)하는 꽃소식(花信)을 전하고 싶은 달이다. 꽃의 빛깔과 향기와 기운을 담아 그리운 이에게 마음을 전하는 일이야 말로 진정 우리 곁으로 3월이 오고 봄이 왔음을 알려준다.

3월이 인간에게 하는 말이 있다면, 잎눈과 꽃눈을 피우기 위해서 오랜 침묵과 시련과 기다림을 견뎌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가르침이다. 새로움을 맞이한 자기 혁신이 있어야 함을 알려준다. 3월에 깨어나 나는 무슨 빛깔과 향기와 의미가 될 것인가.

3월은 기대와 꿈을 안겨주는 달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봄과 함께 새 출발을 다짐함으로써 삶에 활력과 꿈을 맞아들이는 달이다. 3월은 가슴을 펴고 생명이 주는 신비와 축복을 찬양하여야 할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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