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18 05:38
모래시계
鄭 木 日
목욕탕에 가도 한증실엔 잘 가지 않는다. 체질적으로 너무 뜨겁거나 찬물에 들어가지 못해 미지근한 물에서만 몸을 담근다. 그러나, 한증실에 들어앉아 땀을 뺄 때가 있다. 다른 사람들은 시원한 표정인데도 나는 인내의 시험실, 극기의 체험장 정도로 여기고 숨을 가다듬는다. 한증실에 놓여 있는 모래시계를 들여다본다. 작은 구멍으로 모래들이 흘러내리는 모습이 갑갑하기만 하다. 5분이 이렇게 지루하고 긴지 모르겠다. 한증실에선 벌거벗은 자신의 모습을 보며, 육체를 통해 드러나는 삶의 실체와 연령의 무게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진다. 벌거숭이 육체는 현재의 삶을 대변하는 것이고, 각자의 인생을 반영하는 현실의 모습이다.
모래시계를 쳐다본다. 구멍 밖으로 나오려는 많은 모래들을 작은 출입구로 하나씩 통과시키는 모래시계의 구조는 갑자기 도로가 좁아져 교통체증을 일으키는 병목현상이나, 소화불량증처럼 답답한 느낌을 준다. 내가 모래시계 속의 한 알 모래알이라면 언제 저 좁은 구멍을 통과하여 자유로움을 얻게 될 것인가. 모래시계 속에 엄존하는 질서의 무서움, 의외나 요행이 없는 질서정연한 진행 앞에 그만 맥이 빠져버리고 만다.
가운데가 잘록한 호리병 모양의 모래시계는 장구를 세워 놓은 듯한 모습인데, 여인의 날렵한 허리를 연상시킨다. 상반부에 든 모래가 중력에 의해 가운데 구멍을 통하여 서서히 아래로 떨어지게 하여 시간을 재는 장치다.
5분을 모래 한 알씩으로 재고 있다. 시간이란 절대로 쉽게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벌써 몇 번째 모래시계를 거꾸로 놓으며 5분씩을 보내고 있다. 한 알씩 밑으로 떨어진 모래알들은 어김없이 쌓여 원뿔형을 이뤄 놓는다. 모래산을 줄여 놓은 듯이 보인다. 시간의 흔적을 그대로 남겨 놓은 것을 보면서, 망망한 사구(沙丘) 위에 불가사의로 세워져 있는 피라미드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이룬 퇴적물일까 생각해 본다. 어떻게 모래를 이용하여 시계를 만들려고 했을까. 아나로그시계는 공간과 회전개념을 부여하고 있다. 시계바늘은 12개의 눈금 사이로 회전하여 시각적으로 공간성을 보여줌으로서 여유를 준다. 디지털시계는 공간성을 배제해 버렸다. 1초 단위의 시간 흐름만을 수치로 알려준다. 시간은 맥박처럼 쉴 새 없이 흘러가는 강물이다. 현재진행만 보여준다. 디지탈시대는 2박자가 아니라, 항상 1박자이기 때문에 숨이 차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가려면 숨이 가쁘다. 모래시계는 시간의 양감(量感)을 보여준다. 시간이란 소리 없이 자취 없이 사라져버리는 것인데도, 모래를 통해 부피로 보여준다는 점이 놀랍다. 원시적 방법을 취하고 있지만, 모래시계 말고는 그 어떤 장치가 시간을 양감으로 보여줄 수 있는가. 모래시계를 보면, 시간이 살아 움직이고 숨을 쉬는 것을 느낀다.
모래시계를 보며 수건으로 흐르는 땀을 닦아 낸다. 어느새 답답한 기분도 없어지고 열기에도 익숙해져 견딜 만하다. 5분을 기다리는 것이 지루하지도 않다. 모래알들이 많았을 때는 언제 다 빠져나갈까 갑갑했는데, 점점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자, 되려 섭섭해진다. 젊었을 때는 몰랐지만, 나이가 들수록 세월의 속도가 빨라짐을 느끼는 심정이다. 4분쯤 지나 모래알이 떨어지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을 보면서 이젠 애가 탄다. 속도를 좀 천천히 할 수는 없을까. 언제나 정확하게 5분의 흔적을 남겨 놓는 모래시계를 보면서, 내 인생시계엔 지금 얼마만큼의 모래가 남았을까를 생각한다.
내 삶도 모래시계처럼 모래 흔적을 쌓아 놓았을까. 모래 한 알 한 알이 여간 귀중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모래시계 속의 모래 한 알 한 알이 내 삶의 의미와 가치가 돼야 하는데…. 내 인생에 주어진 모래알들로 의미와 성취의 흔적을 만들지도, 아직 하나도 모으지 못한 것을 깨닫는다. 섬짓하고 허전하다. 나에게 남겨진 모래알의 분량은 얼마나 될까. 갑자기 모래시계 속의 모래알들이 유리 속에서 소리치고 있다. 나에게 주어진 모래알들을 자신도 모르게 세월 속에 흘려 보내고 말았다.
아, 내 모래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인생도 한 알의 모래알이다. 바위가 한 알의 모래알이 되기까진 1억년 이상의 세월이 흘러야 한다. 비록 한 알의 모래알일지라도, 필요 없는 건 다 깎여버리고, 1억 년의 체험과 말들을 담아, 한 번이라도 햇빛에 반짝이는 금모래가 되고 싶다. 단 몇 알일지라도 일생의 흔적을 의미로 남겨 놓고 싶다. 한 알의 모래알인 나는.
2014.12.19 18:13
2014.12.24 18:29
바위가 모래로 변하는데 1억년이 걸린다면
모래가 다시 바위로 변할려면 1억년의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건 아무래도 불가능하다. 엔트로피의 법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우주의 먼지로 떠돌다 생명의 유전인자를 만나 탄생한 나는
다시 우주의 흩날리는 먼지로 돌아가는데 얼마나 걸릴 것인가?
그래서 도연명은 이렇게 인생을 표현했는지도 모른다.
人生無根滯 飄如陌上塵 <인생무근체 표여맥상진>
分散逐風轉 此已非常身 <분산축풍전 차이비상신>
인생에 뿌리 없으,니 표연하여 길 위의 티끌 같도다.
흩어져 바람 따라 꿀러 다니니 인생은 불변이 아니어라.
盛年不重來 一日難再晨 < 성년부중래 일일난재신>
及時當勉勵 歲月不待人 < 급시당면려 세월부대인>
젊은날은 두 번 다시 오지 않고 하루에 두 번 새벽 되기 어려우니라
때를 기다리지 말고 부지런히 힘 쓸 진져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네.
No. | Subject | Author | Date | Views |
---|---|---|---|---|
» | 모래시계 [2] | 목향 | 2014.12.18 | 3740 |
194 | 세월의 선물 [9] | 귀담 | 2014.12.13 | 3984 |
193 | 백령도 해변에서 [2] | 목향 | 2014.12.11 | 3524 |
192 | 디즈니랜드에서의 하루 [2] | 목향 | 2014.12.11 | 3591 |
191 | 동몽선습 (童蒙先習) [4] | 귀담 | 2014.12.07 | 4550 |
190 | 무수 무량 [1] | 목향 | 2014.11.30 | 3718 |
189 | 智永 天字文 쓰기 [1] | 귀담 | 2014.11.29 | 4112 |
188 | 침어낙안- 폐월수화 [4] [1] | 귀담 | 2014.11.28 | 8730 |
187 | 귀담한시첩 [ 2 ] [1] | 귀담 | 2014.11.27 | 4909 |
186 | 草書 배우기 [3] | 귀담 | 2015.12.11 | 3672 |
185 | 귀담 한시첩 [1] [3] | 귀담 | 2014.11.24 | 5589 |
184 | 하루에 대한 경배 [1] | 목향 | 2014.11.22 | 3569 |
183 | 금귀(金龜)를 팔아 술을 마신 시인들 [1] [1] | 귀담 | 2014.11.16 | 4135 |
182 | 王羲之의 蘭亭序 [ 1 ] [6] | 귀담 | 2014.11.13 | 8416 |
181 | 한글 흘림체 연습 [2] | 귀담 | 2014.11.02 | 32854 |
180 | 영원 [2] | 목향 | 2014.10.30 | 3691 |
179 | 깊어가는 가을 밤에 [9] | 귀담 | 2014.10.25 | 5221 |
178 | 隸書基本筆法 [10] | 귀담 | 2014.10.23 | 9148 |
177 | 아폴로우주선 달에 가지 않았을까? [3] | 귀담 | 2014.10.21 | 4008 |
176 | 가을 초입에 쓴 붓글 [7] | 귀담 | 2014.10.18 | 4911 |
175 | 아름다운 우리 한글 [3] | 귀담 | 2014.10.12 | 4336 |
174 | 가을에 읽는 글 : 추성부(秋聲賦) [1] | 귀담 | 2014.10.07 | 4774 |
173 | 10월의 기도 | 목향 | 2014.10.03 | 2189 |
172 | 추산이 석양을 띄고 [10] | 귀담 | 2014.09.14 | 5088 |
171 | 아들에게 주는 글 [1] | 목향 | 2014.09.07 | 3950 |
170 | 마음 인사 | 목향 | 2014.09.04 | 1920 |
169 | 바둑과 인생 [3] | 귀담 | 2014.08.30 | 4779 |
168 | 투명한 그리움 | 목향 | 2014.08.29 | 1856 |
167 | 바둑과 막걸리 [3] | 목향 | 2014.08.18 | 4681 |
166 | 막걸리의 힘 [2] | 목향 | 2014.08.10 | 4233 |
- 모래시계를 읽고. -
젊은 시절엔 한증실에서 5분을 보낸다는 것은 큰 고역이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 것을 견디며 나무턱에 앉아 있노라면
1분이 1시간 같았다. 시간이란 이토록 길고 지루하게 느끼기도 하고
고개 들면 하루가 한 시간처럼 훌딱 지나가 버리기도 한다.
한증실에서의 5분은 인내의 시간이다.
숨을 몰아쉬며 모래시계의 시간을 견디는 것이다.
한증막 시간의 5분에서 얻는 시간의 가치를 삶의 목마름으로 인식하는
작가의 내밀한 심경을 읽을 수 있다.
인간은 결국 시간의 공격에 굴복할 수 밖에 없다.
시간의 끈덕진 공격은 단단한 바윗덩어리까지도 모래알로 바꾸어 놓고 만다.
하물며 흙으로 빚어진 인간 쯤이야....
나이가 들어가면서 시간만큼 우리를 짓누르는 것도 없다.
지나고 나면 후회와 아쉬움만 남게 되는 것이 시간이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
마침내 깨닫게 된 시간 속의 자아 --- 햇볕에 반짝이는 금모래 같은
일생의 흔적을 소망하는 목일 선배의 꿈이 이루어 지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