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4.20 06:23
훈민정음 서문을 습작해 보았다. 반백년 전에 배운 것을 새삼 쓰려니 잘 안된다.
몇 번 연습해서 익숙해지면 작품화 할 것이다. 또한 용비어천가도 쓰보고 싶다.
訓民正音해례본
훈민정음이 처음 반포될 때는 한자로 반포되었다, 이것을 해례본이라한다.
뒤에 한문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하여 순 한글로 된 훈민정음을 발표하니
이것이 훈민정음언해본이다.
國之 語音º 異乎中國° 與文字不相流通° 故愚民有誦欲言°而終不得伸其情者°
多矣子爲此憫然° 新制二十八字° 欲使人人易習使於日用矣
<한글 보급을 위한 첫 작품>
훈민정음이 만들어진 후 한글로 창제된 첫 작품이 용비어천가이다
1443년 훈민정음이 반포된 후 세종임금은 한글을 보급하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도록
집현전에 지시하였다. 임금의 뜻에 따라 집현전 학자들이 편찬한 첫 한글책이 용비어천가이다.
용비어천가
용비어천가에 나오는 육룡은 태조 이성계의 역대 선조들이다
육룡은 목조·익조·도조·환조·태조·태종, 이렇게 세종의 선조들을 일컽는다.
원래 목조는 전주에서 태어나 살다 함경도 의주로 건너간 무인(武人) 이안사이다'
이후 그는 원나라에 귀화해 다루가치라는 벼슬을 받아 함경도 지방을 다스렸다.
이안사의 아들인 이행리(익조), 손자 이춘(도조)도 원나라 관직을 물려받았고,
반면 이춘의 아들이자 이성계의 아버지인 이자춘(환조)은 고려 공민왕 때 고려 편에 섰다.
그는 고려가 원나라의 쌍성총관부를 함락하는 데 큰 공을 세웠고,
이후엔 함경도 지방을 다스리는 최고 관직에 올랐다.
용비어천가에서 이성계의 직계 선조는 고조할아버지 목조부터 시작돼는데
목조가 하늘의 뜻으로 북쪽에 터전을 세우고, 익조가 여진족을 물리치고,
용이 도조에게 나타나 자손이 왕위에 오를 것은 예언하며,
환조가 쌍성에서 반역한 무리들을 누른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태조 이성계의 조상들을 높이 찬양해 조선 왕조가 세워진 것을 정당화 하려는 정치적 의도를 엿 볼 수 있다.
2대 정종은 세종의 직계 선조가 아니기 때문에 제외 되었다.
태종의 형이자 세종의 삼촌인 정종은 권력 다툼에 밀려 즉위 2년 만에 태종에게 물려주었기 때문이다.
1445년 세종은 자신의 직계 조상들(육룡)의 생애와 업적을 칭송한 노래 가사가 완성되자 무척 만족해 했다.
여기에 '용비어천가'라는 제목을 붙인 이가 세종임금임을 기억해 두자.
---이상 인터넷 정보 ---
2016.04.28 02:42
2016.05.08 20:18
한글전용⇔한자혼용 헌재 공개 변론
<한자혼용 변론>
국어 어휘 가운데 70%가 한자어. 그런데도 공교육부터 일상 언어 생활에 이르기까지 한자를 말살하는 것은 국민을 우민화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또 이론적으로 1919년 기미 독립선언서부터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까지 한자와 한글을 혼용했기 때문에 두 문자 모두 국어로 규정하는 것이 관습 헌법이라고 주장했다.
<한글전용변론>
한자로 우리말을 표기할 수 있고 한자를 오래 사용해 왔더라도
한자가 우리 고유 글자가 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또 단순히 언어 생활의 편의 차원을 넘어 순우리말을 발전시켜
주체적 문화를 형성해야 한다는 논리도 피력하고 있다.
<나의 견해>
문화교육부의 주체문화 형성 논리는 사리에 맞지 않다.
마치 한자가 우리조상들이 사용하지 못한 언어로 규정하는 태도는 주체문화사상이 아니다.
지금 세계는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세계화시대에 접어든지 오래다.
주체문화를 운위한다면 영어는 왜 배우나?
한국문화를 배우고, 한글을 배우려는 세계인에게 주체문화 운위하는 것은 장벽이다.
풍족한 언어생활을 위하여 한자혼용을 지지한다. 한글만 고집하는 세대와 한자혼용세대의
언어문화활동은 현격한 차이다.
한자가 어렵다고 한자를 포기한다면 우리조상들이 가꾼 문화와
역사를 어떻게 읽고 이해 시킬 것인가.
우리한글이 세계최고의 글자가 되기 위해서는 한자혼용을
통해서 국민의 문화 언어생활을 보다 넓고 풍족하게 하여야 할 것이다.
한자를 포기하는 것은 우민화정책이다.
중국은 한자를 간체화하여 사용하고 있으며, 단지 서예분야에서만 사용하고 있다.
일본은 한자를 혼용함으로써 언어문화생활을 더욱 자랑하고 있다.
왜? 한국은 스스로 언어문화생활의 장벽을 쌓아 제약하려 하는가.
주체사상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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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의 총선이 여소야대로 결론나자, 사회전반이 어수선하게 돌아 간다.
선거란 이기는 쪽과 지는 쪽이 있기마련 모두가 책임 공방으로 할 일은 뒷전이다.
현 정권은 정책추진의 동력을 잃게 되었고, 일찌감치 권력누수가 시작된 기분이다.
그럴 줄 알았지. 하는 짓거리 보면 지고도 싸다. 김정은이 하나 제대로 대응 못하는 정치권이
무슨 할 말 있나? 현 정권의 당연한 평가일 수 밖에 없다. 사회적 정치적 대형 사건들이 터질 때마다
무능함을 보여준 이 정권을 역사는 어떻게 평가할까?
<세종장헌대왕 실록>을 읽고 있노라면 그의 성군됨을 끊임없이 확인할 수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그가 인간으로써 도저히 감내하기 어려운 갖가지 병마에 시달리면서
다른 왕조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초인적인 업적을 이룩하였다는 것이다.
세종대왕은 곁에 앉은 사람도 알아볼 수 없는 만큼의 만성적인 안질에 시달렸고,
옆구리에 난 창과 풍질 때문에 같은 자리에 오랫동안 앉아있지를 못했으며,
각기가 심하여 보행조차 도 자유롭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조갈증(당뇨병)까지 겹쳐 있었다면
이만저만한 병고가 아니었다. 세종대왕은 그런 엄청난 곤경을 헤쳐나가면서
수많은 과학기기들을 발명, 제작하게 하였고, 오늘날 우리가 세계에 자랑하는 정음(正音)까지
창제하였다. 세종대왕이 소망하였던 가장 이상적인 국가란 어떤 것일까?
바로 <용비어천가>의 첫 대목에 그의 이상이 함축되어 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리므로 꽃도 좋고 열매도 많으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