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5.14 10:06
대금 산조 정목일 |
1
한밤중 은하(銀河)가 흘러간다. 이 땅에 흘러내리는 실개천아. 하얀 모래밭과 푸른 물기 도는 대밭을 곁에 두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아.
그냥 대나무로 만든 악기가 아니다. 영혼의 뼈마디 한 부분을 뚝 떼어 내 만든 그리움의 악기------. 가슴속에 숨겨 둔 그리움 덩이가 한(恨)이 되어 엉켜 있다가 눈 녹듯 녹아서 실개천처럼 흐르고 있다.
한 번만이라도 마음껏 불러 보고 싶은 사람아. 마음에 맺혀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아.
영겁의 달빛이 물드는 노래이다.
솔밭을 건너오는 바람아. 눈보라와 비구름을 몰고 오다가 어느덧 꽃눈을 뜨게 하는 바람. 서러워 몸부림치며 실컷 울고 난 가슴같이 툭 트인 푸른 하늘에 솜털 구름을 태워가는 바람아.
사무쳐 흐느끼는 네 음성은 점점 맑아져서 눈물 같구나. 그리움의 비단 폭 같구나.
한 순간의 소리가 아니다. 평생을 두고 골몰해 온 어떤 물음에 대한 깨달음, 득음(得音)의 꽃잎이다.
시공을 초월하여 영원으로 흘러가는 소리…. 이 땅의 고요와 부드러움을 한데 모아, 가슴에 사무침 한데 모아 달빛 속에 흘러 보내는 노래이다.
가장 깊은 곳으로 가장 맑은 곳으로 가거라. 한 번 가면 오지 못할 세상, 우리들의 기막힌 인연, 속절없이 흐르는 물결로 바람으로 가거라. 가는 것은 그냥 간다지만 한 점의 사랑, 가슴에 맺힌 한만은 어떻게 할까.
강물이 흔들리고 있다.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 가장 적막하고 깊은 밤이 숨을 죽이고, 한 줄기 산다는 의미의 그리움이 흐르고 있다.
2
대금의 달인(達人) L씨의 대금 산조를 듣는다. 달빛 속으로 난 추억의 오솔길이 펼쳐진다. 한 점 바람이 되어 산책을 나서고 있다. 혼자 걷고 있지만 고요의 오솔길을 따라 추억의 한 복판으로 나가고 있다. 나무들은 저마다 명상에 빠져 움직이지 않지만 잠든 것은 아니다.
대금 산조는 마음의 산책이다. 그냥 자신의 마음을 대금에 실어 보내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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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멸의 시간 속을 달려와 시공을 가르며 천지간에 울려 퍼지는 하늘의 소리를
천공과 지공의 숨결로 묘사한 목향의 詩는
옛 추억의 시내물처럼 울려 와 우리의 마음자락을 흔들어 준다.
이 노래는 향수가 아닌 추억의 은은함이다.
먼 과거에서 달려와 미래의 꿈으로 우릴 인도한다.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길엔 현재라는 다리가 놓여 있을 뿐
목향의 소리- 대금산조는 현재에 머물지 않는다.
끝없는 미래를 향해 달빛처럼 별빛처럼 빛난다.
그리하여
삶에 생체기 난 우리의 마음과 육체를 살뿐히 보듬어 준다.
추억과 향수는 비스무레 하지만 사실 그 실체는 판이하게 다르다.
추억은 과거를 회상해 미래로 나아가지만 향수는 과거를 회상해
과거에 안주하려는 나쁜 습성을 가지고 있다.
과거에 빛나던 자아 모습 때문에 미래를 보지 않는다.
그 뿐인가 현재의 자신마져 잊어버린다.
하여 목향의 대금 산조는 끊임없이 시공을 파고 들어
우리를 미래로 인도한다.
그래서 좋다, 그래서 아름다운 멜로디로 남는다.
바람처럼 시냇물처럼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