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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나에게 말을 거는 저녁

2015.12.16 22:12

귀담 Views:2537

멸치 다시다 물에 깨소금 뿌려 먹는 국수는 맛깔나는 우리네 음식인데

이것은 오랜 옛날 가난한 시절 너랑나랑 또 잇빨 잃은 내 할배와 할미가

즐겨 잡수시던 것인데, 봄비같고, 햇살같고, 장마비같고, 달빛같은 음식이다.

마을 집집마다 나이롱 빨랫줄에 축 늘어진 하늘 별빛이 우리네 국수다.

이것은 보릿고개를 넘어가며 부르는  청산의 노랫가락 같은 것이다.

개똥벌레며 시궁창 모기들이 모여드는  저녁상 위엔 하얀 왕사발의 국수가

놓이고 후르륵후르륵 목구멍 넘어가는 달콤한 소리는 나무젓가락에 휘감기는 

여름밤의 별빛, 청산유수가 아니던가.

명곤이 형님도 한사발 뿌덜이도 한사발 건너집 시댁도 한 사발.

순식간에 끝내는 국수 먹는날.

오늘 저녁엔 국수를 싫컷 먹고 싶다.

겨울나목이 젓가락처럼 여위어가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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