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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선의 미

2015.08.28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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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선의 미

鄭 木 日

 

우리나라 자연미의 으뜸으로 능선(稜線)의 미()를 들고 싶다. 어딜 둘러보나 눈이 닿는 곳은 산봉우리에서 봉우리로 이어지는 모나지 않게 편안하고 고즈넉하게 구비치는 능선이다. 끊일 듯 말 듯 먼 창공 속으로 영원에 닿기라도 한 듯 이어지는 곡선들은 우리의 마음속으로 흘러든다. 우리 능선이 지닌 자태와 선형(線型)의 미()는 천년만년 명상 속에, 가장 순하고 부드럽게 가다듬어져 그리움으로 흐르고 있다. 바라볼수록 다정하고 고요초롬한 가운데 선미(禪味)가 있다. 평범 속에 깊은 맛이 우러나는 우리 산의 선형은 과장, 위세, 압도하려는 기세를 찾아볼 수 없고, 순리와 달관의 그윽하고 단아한 곡선을 보여준다.

 

한 가닥 난초 잎의 고요한 선형, 강물의 허리 곡선을 취하고 있다. 그리운 임의 눈매처럼 깊고 눈썹같이 부드럽다. 이런 곡선들이 푸른 하늘 속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풍경은 우리의 마음을 신비와 명상의 세계로 이끌어준다.

 

동트는 산 위로 해가 솟을 때 여명 속에 차츰 자태를 드러내는 능선을 바라보면 아슴푸레 하늘로 뻗어 나간 곡선들을 따라 마음도 밝아져 옴을 느낀다. 달이 산 위에서 떠오를 때 능선의 자태는 꿈속에서 보는 정다운 이의 얼굴 윤곽처럼 떠오르다가 어둠 속으로 묻혀버린다. 티 없이 푸른 하늘 속으로 가물거리며 뻗어나간 능선의 선형은 고려청자, 조선백자 항아리의 선()이 되고 초가집 지붕, 기와지붕의 선형이 되지 않았나 싶다. 집을 지을 때도 마루에서 산등성이의 곡선들을 바라볼 수 있게 담장을 쌓는다.

 

산등성이의 그 부드러운 곡선들은 자연으로 연결해주는 마음의 탯줄인양, 또한 이상세계로의 길목인 듯 느껴진다. 맑은 가을 하늘 속으로 뻗어나간 산등성이의 곡선들을 바라보면, 어디선가 은은히 종소리가 울려 퍼질 듯싶다. 세상에서 가장 청명한 하늘과 부드러운 능선을 바라보고 사는 우리 겨레는 은연중 마음속에서 맑음과 부드러움이 샘솟아 이 세상에서 가장 맑은 종소리를 빚어낼 수 있었다. 첩첩한 능선을 타고 하늘 끝까지 번져갈 종을 만들어 놓고 싶었을 것이다. 에밀레종의 맑고 긴 여운은 끝없이 능선을 타고 가는 선율. 산등성이의 곡선들은 하늘 강물이 되어 영원으로 흘러가고, 그 선()은 우리의 마음에 닿아있다.

 

한국인에게 산은 한 자연 대상물만이 아니라, 마음의 쉼터이며 그리움의 원천이기도 하다. 사찰은 산세의 곡선들이 흐르다가 그리움에 이르러, 한데 만나지 않으면 안 될 곳에 자리 잡았고, 계곡의 물도 내려오다 서로 만나 얘기라도 나누지 않으면 안 될 곳, 합수머리에 지어졌다. 산세가 뻗어나가다 물들이 흘러가다 서로의 아름다움에 반해 멈춰 서서 우두커니 바라보고 싶은 곳을 골라 절을 지었다.

 

조계산 송광사, 속리산 법주사, 가야산 해인사, 영취산 통도사 우리나라 명 사찰들이 다 그런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능선들이 부드럽게 굽이치듯 흘러서, 대금 가락처럼 유유히 영원 속으로 뻗어나가다 닿는 곳에 꽃처럼 사찰이 피어있다. 우리 산들의 부드럽고 인자한 곡선을 보면 마음의 티끌과 시름이 어느새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우리 산들의 곡선은 신비의 피리소리가 번져나간 것이다. 이별했던 임이 부르는 손짓이며, 천년만년 쉬지 않고 흘러가는 강물의 유연한 곡선이다.

 

산도 보이지 않는 대평원을 가진 대륙, 바다로만 펼쳐진 섬, 굴곡이 심하며 괴기하고 웅대한 모습의 산들이 있는 나라들과는 달리 우리나라 산은 어디서나 친근하고 고요한 자태와 선으로 포근히 맞아준다. 이런 곱고 부드러운 산등성이의 곡선이 민족의 마음속에 담겨서 영원의 선형이 되고 가락이 되고 미()의 원형선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찬탄과 경이의 선()들이 아니라, 백두대간에서 뻗어 내린 웅대한 기상을 지녔으면서도 한없이 부드럽고 편안해지는 온유의 선들은 영원 속에 얻은 마음의 미소가 아닐까.

 

어느 곳에서나 눈 맞춤 할 수 있는 능선들이 우리 마음을 푸른 하늘로 닿게 한다. 산등성이가 지닌 한없이 부드러운 곡선의 미()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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