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1.08 18:01
존 재
鄭 木 日
비 오는 여름, 있어도 없어도 그만일 듯한 개망초꽃이 되어 들판에 나가 보았어. 비안개 속으로…….
누가 부는 것일까. 한 가닥 실바람 끝에서 플루트 소리가 들려왔어. 무논에 펼쳐놓은 초록빛 융단 위에 문득 드러눕고 싶었어. 그냥 논바닥 위에 누워 버릴까……. 한 포기 벼가 되는 거야. 한 알의 비안개 미립자가 되는 거야. 무논의 물과 부드러운 흙에 닿아있는 벼들의 수염뿌리가 되는 거야.
희뿌옇게 비안개 속에 펼쳐진 외로움의 광막한 공간…. 숲속이나 안개 속에선 머리 위로 커다란 장막이 둘러쳐져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한 세상에 있음을 느꼈어.
나를 낳게 한 것은 이 대지(大地)가 아니었을까. 들판에 드러눕고 싶은 건 한 알의 씨앗이 되어 마침내 땅에 묻히게 되는 까닭 때문 일거야.
농부는 어깨 죽지가 빨리 썩어야 흙으로 편안히 돌아가고, 썩고 썩어야 향기로운 새 생명이 탄생하는 법이지.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영원히 풀리지 않는 물음 속에 갇혀서 안개처럼 어디로 흘러갈까.
비 오는 여름 들판에선 초록빛 생명의 피비린내가 풍겼어. 대지에 묻힌 자의 썩은 흔적 위에 생명의 떡잎들이 피어나서 진초록의 핏 냄새가 자욱했어. 누구나 어머니의 젖무덤같이 부드러운 땅의 속살에 한 톨의 씨앗이 되어 묻히게 될 걸……. 썩은 진흙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듯이.
노인은 볍씨처럼 땅에 묻혀 다시 태어나고 초목의 초록은 짙어가 황금빛으로 변해가는 거야.
나는 개망초 일 수도 한 포기 벼 일 수도 있어. 비안개 한 알의 미립자 인 걸. 한 알의 흙일 따름이야. 물은 구름이 되고 또 강물이 되어 흐르지. 모든 게 흐르고 있어. 죽음은 생명을 낳고 생명은 죽음을 위해 있어. 나는 비안개 한 알의 미립자가 되어 떠돌고 있지만, 언제나 너에게 닿고 있어. 너의 손, 이마, 눈동자, 입술에 닿고 싶어. 닿으며 손잡고 흐르고 싶을 뿐 …….
작년 가을, 산길을 걷다가 소나무 밑 바위에 쉬고 있었어. 무심코 바지에 풀씨들이 붙어있는 것을 보곤 하나씩 떼어내고 있었어. 허공중에 흩날릴 풀씨 한 알을 들여다보면서 일생(一生)은 이렇게 끝나는구나 생각했어. 꽃은 잠시 피어 시들고 사라지는 구나. 그 생각의 끄트머리가 설래설래
고개를 흔들었어. 끝이 아니야. 버려진 듯 하찮아 보여도 귀중한 결실이었어. 꽃으로 피어 이루고 싶은 소망이었어.
인간의 무덤 위에 풀들은 자라고, 사라지지 않아. 풀씨 한 톨에서 느껴지는 생명의 맥박…….
꽃향기가 풍겨왔어. 생명의 궁전이었어. 끝이 아니라 언제나 시작인 영원을 잇는 고리였어.
비안개 덮인 여름 들판에 나가보면 모두가 한 세상 속에 은밀히 닿아 있음을 느껴. 삶과 죽음을 뛰어 넘어 존재의 의미도 말할 필요도 없이…. 나는 한 개의 미립자일 뿐이야. 한 알의 모래알….
가끔 깨닫곤 하지. 나는 없어도 좋을 듯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 한 알의 씨앗이 되려면 사랑과 삶의 의미로 뭉쳐진 결실이 있어야 한다는 걸……. 그래야 싹이 나고 떡잎이 나지 않을까.
싹을 틔우는 씨앗 하나 되는 것도 예사롭지가 않아. 나는 그냥 무의미한 존재가 아니야. 삶에 무게를 담아 한 톨의 씨앗이 돼야 해. 언젠가 눈을 감고 대지에 드러누울 수 있게. 들판에서 싹을 틔울 수 있게.
내 일생도 씨앗이 될 수 있을까. 다시 돋아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아름답게 썩을 수 있을까. 개망초는 있으나 마나한 존재가 아니었어. 흙도 죽은 자의 넋과 흔적이 이룬 한 알씩의 결정(結晶)이었어. 실낱같은 바람 한 가닥도 생명을 키우는 힘살이었어.
작년 가을에 보았던 그 풀씨들은 어느 곳의 초록이 되었나. 나는 대지가 포근히 맞아줄 씨앗 한 톨이고 싶어. 초록이 되고 들판이 되고 싶어. 너와 함께 무지개로 떠오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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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망초꽃 / 박창우
개망초꽃은 많은 시인 묵객들의 화제로 등장하고 있다.
먼저 개망초꽃 詩 한 수 감상하자
개망초꽃
그대 떠나간 빈 들녘에
개망초 고운 꽃들이 하얗게 피었네
내 삶의 어디 쯤에서
그댈 다시 만날까
그 맑은 가슴을 마주할 수 있을까
그대 두고 간 노래 몇 개
들꽃처럼 가난한 숨결 한 묶음
- - - - - - - - - - -
- - - - - - - - - - -
둥근 산 위로 흰 별이 뜨면
그대가 밝히는 촛불인 줄 알겠네
그대 떠나간 빈 들판에
이름 낮은 꽃들이 하얗게 피었네.
< 詩話와 댓글 >
땀흘러 개간한 땅에 하늘에서 내려 왔는지 농부보다 먼저 땅을 차지한
망초꽃에 농부는 화가 치민다.
하여 농부는 개망초란 이름을 꽃에게 붙였는지도 모른다.
쓸모없는 꽃-- 개망초꽃.
농부가 애써 개간한 땅에 먼저 뿌리 내려 꽃피운 얄미운 꽃.
존재는 에너지의 결합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살아있음을 증명이라도하듯
그는 사색한다.
개망초꽃이 되어 명상의 허공을 날개치며 눈부신 실존을 더듬어 나간다.
그는 한 톨 씨앗으로, 바람의 힘줄로, 푸른 벌판의 초록으로 존재하다
그 모습을 변화한다. 생명은 새로운 에너지 형태로 모습을 바꾸지만
그 생명이 지닌 총체적 에너지는 언제나 일정하다는 엔트로피 법칙이다.
농부의 어께죽지는 썩어 수소 질소 유기물질로 변하고, 농부가 뿌린 씨앗은 썩어
새로운 DNA결합이 일어나 생명의 싻이 돋는 대변화 이것이 바로
존재 즉 새로운 에너지의 결합이 아니고 무었이겠는가?
개망초꽃으로 시작하여 결국 개망초꽃으로 돌아오는 회향 본능.
한 톨 토코마리 풀씨같은 나의 < 존재>를 바라보게 된다.
1910년 나라의 주권을 잃은 경술년 국치의 해에 망초꽃이 산야를 뒤덮어
사람들은 국치의 한을 꽃에게 전가하여 그이름을 <亡草>라 불렀으니
꽃이름의 애환을 알듯도 하다.
< 개망초꽃>
대들보 서까래 내려앉은 자리
개망초꽃 피었다
폐허가 밀어올린 꽃
폐허의 노래,
망국의 그 해 우우우 돋아난 꽃이라 했던가
쓰러진 자리 호기롭게 피었다
여름 한낮 땡볕에도 유유자적
개꼬리풀 더불어 의기양양하다
앞마당 접수하고 높은 담장도
가뿐히 올라서고
대문간까지 쫘악, 깔렸다
채송화 봉숭아 분꽃 맨드라미 다 몰아내고
개망초는
몰락한 보금 자리의 위세 좋은 새 주인,
도둑괭이 왕거미 지네 들쥐들 불러
멋대로 엉켜 산다
마음이 이따금 들여다보던 그리운 옛날들은
저들의 발아래 다 묻혔다
마을 휘젓고 다니는 망초들의
푸른 군홧발,
새로운 폐허가 자꾸 생겨난다
방심하지 마라
저 한통속들,
떼로 몰려가 금방 제 세상 만들어버린다
개망초 욕할 일도 아니다
저들은 제 이름값하고 산다
몰락한 당신을 조롱하며
한가롭게 꽃 피우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