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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무늬수막새

2014.12.28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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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무늬수막새(人面文圓瓦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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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鄭 木 日

 

 

국립신라박물관에 가면 관람자의 눈을 환히 밝혀주는 신라인의 미소가 있다. 얼굴무늬수막새(人面文圓瓦當)이다. 기왓장에 그려진 얼굴 한 쪽이 깨졌지만 웃음은 깨지지 않고 초승달처럼 웃고 있다. 이 얼굴무늬수막새는 7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름 11.5cm이며 경주 영묘사 터(靈廟寺址)에서 출토되었다.

 

얼굴무늬수막새는 다듬거나 꾸미지 않은 맨 얼굴이다. 서민들의 진솔하고 담백한 마음의 표현, 가식 없는 무욕의 미소일 듯싶다. 얼굴무늬수막새는 남자 같기도 하고, 여자 같기도 하다. 얼굴에 귀가 없다. 둥근 수막새이기에 귀를 표현하기보다 생략하는 쪽을 택했다. 우뚝 솟은 코는 서양인처럼 매끈하지 않다. 콧등이 뭉툭하게 솟아 친밀함을 더 느끼게 한다. 코를 중심으로 양쪽에 눈을, 아래쪽에 입술을 그려 넣었다.

 

아쉽게도 입술의 삼분의 일이 빗살처럼 떨어져 나간 상태이다. 온전하지 못한 얼굴무늬수막새이지만 신라인의 얼굴을 보여준 유일한 문화재이다. 입술이 웃는 모습이지만, 평범한 웃음이 아니다. 진흙 속의 연꽃처럼 오랜 사유 끝에서 피어난 미소다. 흙으로 주물러 단박에 빚어낸 솜씨이지만 불가사의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깨달음의 경지에서 피워낸 미소인지, 슬픔의 끝에서 눈물을 다 쏟고 나서 편안히 짓는 미소인지 알 수 없다.

 

손가락으로 쓰윽 두 눈을 조금 파이게 해놓았을 뿐인데 표정이 깊어 오묘하다. 입술의 양끝이 위로 치켜 올라간 것은 맑은 생각이 영원과 만나는 순간일까. 알 듯 모를 듯한 표징(表徵)은 깨달음의 미소와는 다르다. 저자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백성들의 소박하고 욕심 없는 미소다. 희비애락(喜悲哀樂)을 다 겪고 나서 삶의 이치와 순리를 알게 된 민초들의 표정이 아닐까.

 

오른 쪽 눈은 앞을 보고 있지만 왼 쪽 눈은 감겨있는 듯 자신의 내부를 보고 있다. 눈 밑의 두 볼이 도톰하게 올라 미소를 떠받들고 있다. 절벽에 새겨진 마애불상(磨崖佛像)을 보고 경배를 올리던 신라인들의 신앙심에서 무심결에 떠오른 미소일까. 즉흥적인 감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삶 속에 얻은 깨달음에서 솟아오른 마음의 표현이다. 부풀어 오른 볼은 입체감을 드러내며 미소의 깊이를 더해 준다. 신라인들은 얼굴무늬수막새를 통해 하늘과 마음의 대화를 나누려 했나 보다.

 

기와 장인이 무심결에 담아낸 신라인의 얼굴, 은근하고 정다운 표정 속에 피어오른 미소는 평범한 일상에서 얻은 마음의 꽃이 아닐까. 생각에 잠긴 듯한 두 눈을 새기고 귀 쪽으로 치켜 오른 듯한 입술 끝엔 알 수 없는 미소를 띠워 놓았다. 기와 장인의 순간적인 장난 끼의 발산으로 보기에는 천진한 발상이고 파격이다. 석굴암본존불의 미소는 깨달음의 미소이지만, 얼굴무늬수막새의 미소는 인간의 미소여서 더 정감이 간다. 보통 사람들의 삶과 표정에서 피어난 미소이기 때문이다.

얼굴무늬수막새는 기와문양처럼 일정하게 찍어 낸 것이 아니라, 기와 장인이 순식간에 둥근 수막새에 신라인의 얼굴표정을 표현해 놓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냥 표현 본능에 따른 것이라기보다 신라인의 마음을 하늘에 보여주고자 한 게 아니었을까.

깊은 생각 속에 잠긴 두 눈, 입술꼬리가 치오르며 미소를 머금은 입술, 높지도 낮지도 않은 코……. 둥근 수막새의 미소와 여운은 단순함과 소박함이 빚어낸 것이어서 마음에 닿아온다.

천 년 신라의 역사 속에 석굴암, 다보탑, 석가탑, 에밀레종, 금관 등 민족문화의 꽃을 피운 유물들이 남아 있지만, 신라인의 얼굴과 마음을 담아 낸 유물은 얼굴무늬수막새 뿐이다.

얼굴무늬수막새를 보면 신라의 얼굴이 보이고 천 년의 미소가 번져나고 있다. 얼굴무늬수막새는 신라 천 년을 뛰어 넘어 영원 속에 한국인의 표정과 마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문화재 중 불가사의한 깨달음의 미소를 보여주는 국보7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신묘한 걸작이다. 얼굴무늬수막새는 삼분의 일이 떨어져 나간 기왓장에 그려진 얼굴 표정이지만, 신이나 부처상이 아닌 백성들의 얼굴 표정에서 피운 미소이기에 더 마음이 닿아 옴을 느낀다. 근심을 지우게 하는 알 수 없는 미소는 광명과 지혜의 세계와 닿아있다.

 

얼굴무늬수막새의 표정은 무슨 생각에 잠겨 있을까. 천년의 미소는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그 표정 속엔 찰라 속의 영원과 일상 속의 깨달음이 있다. 평범함 속의 신비를 알려주는 게 아닐까. 유한한 삶을 살 뿐인 인간으로서 시공간을 뛰어넘어 달관과 초월의 미소를 보여준다. 마음의 때와 얼룩과 먼지를 씻어내어, 순간에서 영원과 만나는 표정이 아닐까.

 

얼굴무늬수막새 사진을 벽에 붙여놓고, 그 미소와 만나면 금방 마음이 편안해지고 만다. 얼굴무늬수막새를 보면서 은연 중 천년의 미소를 흉내 내본다. 신라 천년이 아니라, 영원과 만나고 있다.

 


수필가 정목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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