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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항아리

2015.04.20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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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항아리

                                                    鄭 木 日

달항아리를 보면 달빛의 맑은 도취 속에 빠진다. 달빛 속의 미인이나 꽃은 더 어여쁘고 향기롭다. 햇빛은 사물의 분명한 모습을 드러내지만, 달빛은 마음까지 닿아오는 여운(餘韻)을 준다.  
달항아리를 보면 불현듯 조선 중엽의 달밤 속에 있는 듯하다. 달은 농경시대에 우주의 중심, 마음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 농사일이나 살아가는 일이 달의 주기에 맞춰 이뤄졌다. 한국인의 마음속에는 보름달이 떠 있었다. 달은 해보다 유약해 보이지만, 마음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햇빛처럼 눈부시지 않고, 한없이 부드러운 세계를 펼쳐낸다.
달항아리는 장식이나 꾸밈이 없다. 순백의 공간에 달빛의 충만이 있을 뿐이다. 텅 비어 있어서 적막감 속에 그리움이 밀려온다. 한국의 문화는 햇빛 문화라기보다는 달빛 문화가 아닐까. 햇빛 속에 환히 드러낸 당당함의 미학이 아니라, 달빛 속에 물든 은근함과 정갈함의 미학이다. 담백함과 순박함이 마음을 끌어당겨 오래도록 싫증나지 않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18세기 중국은 백자 위에 녹, 황, 백, 삼채(三彩)와 청, 황, 홍, 백, 흑, 오채(五彩)의 화려한 채색 자기를 만들었다. 일본도 섬세하고 정교한 채색 자기를 만들었다. 한국인만은 도자기공예에서 고려 500년간 청색을, 조선 500년간엔 백색을 탐구했다. 세계에서 한국인만이 500년간에 걸쳐 청자와 백자를 만드는 데 모든 심혈과 역량을 쏟았다. 울긋불긋 휘황찬란한 다색(多色)를 외면한 채, 단색(單色)의 추구에 집중해 왔다.
한국인의 미의식은 바깥으로 드러나는 치레. 장식, 과장, 기교 등의 의식보다는 본질의 탐구, 마음의 정화, 깨달음에 두고 있었다. 청색은 한 점 티끌도 묻지 않은 청정의 하늘, 백색은 고요와 맑음의 달밤을 담아 놓았다. 한국인의 마음은 우주와 영원의 세계에 닿아있다. 달 항아리엔 화려하고 사치스런 것을 떨쳐버리고, 영원의 발견과 마음의 정화를 보여준다. 얼마나 마음에 묻은 때와 얼룩을 씻어내야 텅 빈 푸른 하늘이 되고, 맑은 달밤이 될 수 있을까.
조선시대 백자엔 민족의 마음을 담아 놓았다. 태어나서 흰 배내옷을 입고, 죽어서 입는 수의(壽衣)도 흰 색이다. 한국인들은 유독 흰 색을 선호해 왔다.  동서고금의 모든 장식들이 기교에 빠져들어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면을 드러내지만, 조선 도자기는 단순하고 자연스런 형태 속에 소박하고 정갈한 미를 품어낸다. 일체의 허식과 과장을 버리고 욕심을 비워낸 바탕에 여백의 미가 흐른다.
달항아리는 달빛을 담아 텅 비어 있는 세계이다. 달빛만 있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지만, 어디선가 대금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사뿐사뿐 정적을 밟고 임이 걸어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비어 있기에 보이는 마음의 세계이다.
달항아리를 보려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물 1437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국보 제310호 달항아리를 만날 수 있다. 국보 제 309호인 ‘백자대호(白磁大壺)’(삼성미술관 리움 보관)는 높이 44cm, 몸통 지름 42cn 크기에 구연부가 짧고 45°정도 경사진 것으로 보름달처럼 보이나 완전한 원형은 아니다.
보통 높이가 40cm가 넘는 것을 ‘달항아리’라 부른다. 몸체의 윗부분과 아래 부분을 따로 만들어 붙인 다음, 높은 온도의 불가마에서 굽기 때문에 접합부분이 변형되어 보름달처럼 둥근 형태로 나오는 경우가 드물다.
달항아리는 온전한 원형(圓形)이 아니다. 한쪽으로 약간 비뚤어진 곡선이 흘러들어 더 운치가 있고 여유가 있다. 좌우대칭의 완전한  곡선이 아니라, 흐름이 굽어져서 흐른 모습에서 더 다감하고 구수한 느낌이 든다. 달항아리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에서 장인의 손길과 마음까지 느끼게 만든다. 보름달보다 열나흘 날 달처럼 어느 곳인가 좀 비어 있는 듯한 모습이 마음을 끌어당긴다. 만월(滿月)의 완벽이 아닌 미완(未完)이 주는 여운이다. 앞과 뒤, 좌우가 빈 틈 없는 원형이 아니어서 더 정겹고 구수하다. 어느 한 쪽이 비스듬히 구부러진 데서 진솔한 멋과 소탈한 맛을 느끼게 한다. 빈틈과 여백이 있기에 보는 이가 마음으로 채워가는 맛을 스스로 알게 해준다.
우리 선조들은 달항아리를 왜 만들었을까. 달항아리는 어두운 밤에도 마음이 부셔서 황홀해지는 달밤을 맞아들일 수 있다. 달은 말 없는 벗이 되고 대화자가 돼준다. 우주와 마주 앉아 오래도록 바라보며 소통할 수 있는 대상으로서 이보다 더 좋은 벗이 없다. 백색의 텅 빈 공간에 무한의 달빛이 내려와 있다.
달항아리는 단순함의 미학, 비어 있음의 아름다움을 지녔다. 볼수록 정감과 그리움이 넘치는 달빛의 세계……. 달 항아리는 세계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한국인의 마음과 미학을 담아 놓은 도자기이다.
달항아리는 원만하고 안정감이 있다. 평화롭고 순박하다. 맑고도 고요하며,  점점 깊어지고 환해진다. 지상(地上)과 천상(天上)이 만나고, 찰나와 영원이 만나고 있다. 달항아리엔 어떤 순간일지라도 때 묻지 않고 순박한 삶을 살고자 한 선조들의 심성이 담겨있다. 바라보면 달처럼 떠올라 무상무념(無想無念)의 세계에 잠길 듯하다. 삶의 발견과 깨달음의 미학을 담아놓은 그릇이다. 한국인의 영혼과 한국미의 정화(精華)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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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짱과 목일 두 거인이 만나 담소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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