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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담배 피우던 옛이야기

                                         

                                                                    정목일

 

 

  날이 저문다. 손에 스마트폰만 쥐고 있는 손녀들에게 옛이야기 한 자락 들려주고 싶어진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영어를 배워 조잘거리는 손녀들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옛날이야기를 듣기라도 하겠는가.

 

 

  조선의 밤은 귀신들의 그림자로 짙어 온다. ()의 뼈다귀들, ()의 혼불들이 시퍼런 얘기가 되어 돌아오고 있다. 원통하고 애꿎고 진망궂은 얘기들 ……. 애고, 애고, 듣기 싫다. 뒷간에 내다 버리고 싶지만, 들을수록 곱씹을수록 구수하고 그리워 애가 타는 얘기들이 슬그머니 눈을 뜬다.

 

  산그늘은 서낭당 근방에 와서 더욱 으스스해지고 고개 마루를 넘을 땐 도깨비불을 켜고 나타난다. 이런 밤엔 으흐흐흐…… 몽달귀신과 도깨비와 여우의 울음이 한데 어우러져 무섬증에 빠져 들게 한다. 하늘의 별들도 제각기 한마디씩 중얼중얼 주문을 외고 고개·바위 ·성황당·연못의 귀신들이 깨어나, 어쩔거나 나도 얘기 좀 하자며 모여든다.

 

 

  마소, 마소 들으나 마나 한 얘기, 조선 땅 어디인들 귀신이며 도깨비 나오지 않는 땅 있으랴, 어느 고을인들 효자·열녀 나오지 않은 데 있으랴. 조선의 땅은 백성과 귀신들이 함께 사는 땅. 죽음과 삶이 얼기설기 얼기고 이승과 저승이 맞물려 있는 곳. 산마다 신령이 살고, 샘마다 신령이 살아 퍼렇게 눈을 뜬다. ()과 봉()이 나는 조선의 밤. 어둠 속 어디선가 호랑이가 으르렁거리고, 가난한 나무꾼 하나가 산길을 오고 있는가.

 

 

  ‘……살았단다로 시작하여 그랬단다’’로 밤은 깊어 간다. 백성들이 일터에서 돌아와 얘기에 취하는 밤. 바깥은 호랑이와 여우와 귀신들의 차지다. 아이들은 전설의 뼈와 살을 핥으며 자라서 고향에 뿌리박는 나무가 된다. 태어난 곳에 묻혀서 고향의 귀신이 되거나 하나의 얘기가 되길 원한다. 조선의 밤은 ……살았단다의 얘기로 깊어 간다. 삶이란, 역사란 시퍼런 기록보다 그랬단다, 그랬단다의 추측일 수 있지 않으랴.

 

 

  애고 애고, 서러워라. 내 원한을 어이 할꼬. 눈을 감고 어찌 죽을꼬. 조선의 밤엔 산천마다 개똥벌레처럼 흐르는 혼불들. 그 얘기들이 질펀히 산천에 널려서 풀이 되고 나무가 된다. 밤이면 혼불이 되어 오싹오싹 심장을 떨게 만든다. 애고 애고, 서럽고나. 마을마다 한두 개의 기막힌 이야기가 남아, 밤이면, 인불을 켜고 나온다. 남는 것이라곤 얘기밖에 없고나. 이야기가 넘쳐서 떡살무늬가 되고 부적이 되고 자수가 되었구나. 이야기가 꿈이 되고 노래가 되는구나.

 

 

  할아버지, 할머니……. 무진장한 얘기 보따리는 풀어 놓지 않고 줄줄 욀 수 있는 얘기, 왜 한 밑천만 끌러 놓나요. 손자들이 무서운 할아버지 품에 안길 수 있을 때란, 할아버지가 담뱃대를 물고 얘기를 할 때다. 감히 수염을 만져 볼 수 있게 허용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옛 얘기는 달짝지근한 맛이다. 슬픔과 고통 속에서도 한 가닥 희망은, 착한 사람에게는 언제고 복을 받게 되리라는 확신이다.

 

 

  걱정 말아라. 걱정 말아라. 마음 착하고 효성 지극하면, 하늘이 그냥 보고 있지만은 않는다. 호랑이도 도개비도 귀신도 다 네 편이다. 조선의 백성들은 실망하지 않는다. 수많은 난리를 겪으면서도 꺾어지지 않는다. 떳떳하게 죽어야만 저승에 가서도 조상 뵐 낯이 있기 때문이다.

 

 

 

  그립구나, 송진내 나는 우리의 얘기. 할아버지, 그 무진장한 얘기 주머니 어디다 버리고 가버렸소. 문 밖을 나서면 만날 것 같은 몽달귀신과 도깨비는 어디로 갔나. 고개며 성황당 귀신들아, 어디로 갔느냐. 호랑이와 여우와 곰은 어디로 갔느냐. 용과 봉황새는 어느 하늘로 날아갔느냐. “에헴, 에헴……할아버지의 기침소리는 어디로 갔을까.

 

 

  텔레비전,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손녀의 손을 잡고 호랑이와 도깨비와 귀신의 나라로, 옛 얘기의 도취 속으로 가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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