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먼 기억 / 목향

2015.10.03 01:57

목향 Views:5117

          먼 기억
                                                         鄭 木 日






먼 기억을 달빛이 슬그머니 데리고 올 때가 있다.
내 스물다섯 살 적 가을밤에 한 여인과 만난 일이 있어, 그 시각에 그 장소로 가본다. 강가의 수양버들 밑이다.

어스름 달빛 속, 나무 아래 우린 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국화꽃 향기가 바람을 타고 흘러왔다. 하늘 속에서 별똥별이 빛 화살로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자정이 지나도록 가을 별자리를 바라보며 마음이 더 반짝거렸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 법 한데도,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 밤이 다시 오지 않을 것이란 걸 예감하면서도, 맑고 투명한 침묵 속에 빠져있었다. 하늘과 땅과 만물이 달빛 속에 눈 감고 입을 다물고 있었다.
달이 밝고 향기로워 더 이상 좋을 수가 없었다. 말이 필요 없는 별리의 시간이 오래도록 숨죽여 있었으면 싶었다.

음력으로 그 날짜만 되면 그 장소로 가보곤 한다. 그 날 그 시각이라도 예전의 그 달일 수 없다. 다신 그 시  공간을 만날 순 없으리라. 그 자리는 비어 있다.

세월이 가고 그 자리에 있던 나무는 베어져 사라졌지만, 홀연히 마음속 스물다섯 살 적 가을 달이 떠올라 우리 만남도 간간히 이뤄지고, 그 순간이 정지돼 있음을 느낀다. 지나간 일은 찰나에 불과하지만, 먼 기억을 달빛이 슬그머니 데리고 온다. 오직 달만이 그 일을 알고 있다.  
No. Subject Author Date Views
315 바람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고 [3] file 귀담 2013.09.16 5801
314 우주, 그 끝은 어디인가.[2] [2] 귀담 2013.08.18 5785
313 호랑이 담배 피우던 옛이야기 [1] 목향 2014.05.29 5779
312 詩 : 맨하탄에는 고래가 산다. [1] file 귀담 2013.09.27 5774
311 나무 송 : 나무야 나무야 푸른 나무야 [1] file 귀담 2013.05.27 5774
310 도연명의 독산해경 / 석현 임재우선생 작품 [1] 귀담 2014.05.11 5769
309 외국인 바둑대회 [1] 귀담 2013.12.29 5760
308 숭례문 현판 글씨 [2] file 귀담 2013.05.03 5748
307 란초 / 서정주 시 [1] file 귀담 2013.05.10 5729
306 가람선생의 詩魔를 쓰다 [7] file 귀담 2015.03.21 5719
305 방필 원필 [1] file 정일헌 2015.05.11 5704
304 陶淵明의 <桃花源記> 와 <桃花源 詩 > [4] file 귀담 2013.05.26 5701
303 노년의 삶 [6] file 귀담 2013.05.18 5696
302 아침에 [5] file 귀담 2015.07.30 5606
301 수양버들 [6] 목향 2014.02.24 5604
300 萬海 한용운 옥중 시 [1] 귀담 2014.05.11 5603
299 귀담 한시첩 [1] [3] file 귀담 2014.11.24 5584
298 거북이의 노래 / 귀담 [4] file 귀담 2013.05.26 5567
297 내가 쓴 입춘서 [2] file 귀담 2013.04.30 5567
296 초록마음 [草綠心] [1] file 귀담 2013.05.17 5545
295 새해 아침 우주관광 [5] file 귀담 2015.01.01 5534
294 孤陋愚蒙 고루우몽 <작품3 > [2] file 귀담 2013.04.26 5515
293 문둥북춤 [6] file 목향 2013.07.04 5512
292 율객(律客) - <작품5 > [2] file 귀담 2013.04.28 5505
291 욕쟁이 새 / 귀담 [2] file 귀담 2013.04.28 5449
290 작품 6 [1] file 귀담 2013.05.11 5445
289 졸시 한 편 쓰다. [3] file 귀담 2015.04.18 5444
288 漢四郡의 실제위치 [3] 귀담 2013.11.23 5431
287 역사공부 : 계유정란 [4] 귀담 2014.03.04 5365
286 백자(白瓷)의 태깔 / 鄭 木 日(33) [1] 귀담 2013.10.20 5363
d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