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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준재의 <鄕愁 >

2015.03.08 16:36

귀담 Views:3584

 
뉴욕일보 취재부 기사입력  

방준재

<내과 전문의>


▲ 진주교에서 본 남강 상류. 남강은 강이 진주 남쪽을 향해 흐른다 하여 부쳐진 이름이다. 멀리 진주성과 축석루도 보인다.     © 뉴욕일보 취재부


‘향수’란 무엇인가?

 ‘고향이 그리워 느끼는 슬픔’이라고 사전은 답하고 있다.

그리움에 뒤따르는 슬픔이란다.

그러나 체코의 망명작가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 1929- )는 그의 소설 <향수(Ignorance 2000)> 에서

향수란 돌아가고자 하나 채워지지 않는 욕구에서 생기는 고통이라 했다.
고통, 곧 그리움의 끝에 자리하는 괴로움은 고향뿐만이 아니라

거기에 얽힌 과거, 잃어버린 유년기, 또는 첫사랑에 대한 욕망 등은 절실하나 고향과 고향에 얽힌 사연들이

지금 어떻게 되어 있는지, 무엇이 되어있는지를 알지 못하는 데서 생겨난 고통이라 말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그의 소설 원명을 <무지(Ignorance)>로 발간했으나,

내용은 따라온 고향, 그리고 거기에 얽힌 사연들인지라

한국판은 의역하여 <향수(Nostalgia)>로 붙인듯 하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슬픔이 되고, 괴로움이 되고, 그러나 그 밑바닥에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

고향의 정경, 옛 사연들을 지금 알 수 없는 무지(Ignorance)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끝내 고통을 안겨 준다는 듯하다.
각설하고 1973년 미국 땅을 밟은지 10년 만에 고향 진주를 찾아 나섰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가만히 누워 고향집을 생각하면

 주변 환경을 세세히 그림으로 그릴 수도 있지만

막상 고향을 찾아갔지만 그리도 정든 우리 집을 찾을 수 없었다.

(어디를 가고 오든 나는 전송객이나 마중하는 사람을 저어한다.

혼자서 떠나고, 찾아가는 버릇을 좋아한다.

 그것은 타계하신 부모님이나, 나의 형제자매가 알고 있어, 저 녀석은 그러려니-차치해버린다.)
1970년대부터 고국에 불기 시작한 현대화는 당시 미국의 타임지(Time Magazine)가 그랬듯

(그들은 표제로 Koreans Are Coming이라 했다.)

대한민국의 지도 바깥 쪽으로 발걸음을 빨리 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조용한 나의 고향 진주에도 불어 고향집의 주변을 확 바꾸어 놓아

집 근처에서 집을 못 찾아 쩔쩔맨 적이 있다.

이것은 그때 당시를 희화하거나 과대표현 하기 위함이 아니라 말한 그대로 사실이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겨우 찾은 수정북동의 고향집에서 어머님이 해주신 음식들을 챙겨 먹었다.

어머님은 내가 어릴 때 무엇을 좋아 했는지 기억해 두셨다가 골고루 차려주셨다.
다음 날 진주시가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진주고등학교에서 남강청교를 잇는 길이 진주시를 관통하는 대로다.

그 길을 따라 걸어 보았다.

천천히 두리번거리면서 혹시나 아는 고향 친구와 사람을 우연히 만날까 하는 바램에서다.

그러나 강산도 변했지만 인걸도 간데 온데 없었다.

아무도 나를 알아 보거나 내가 알아 볼 수 있는 없엇다.

나는 생판 처음 찾는 도시처럼 배회하고 있었다.

한 여름의 아스팔트 열기만 얼굴에 땅으로 묻어나고 있었다.
대로변 큼지막한 다방에 들어갔다.

아이스커피를 시킨 후 한참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눈여겨 보았다.

 아는 사람은 없었다. 어깨를 툭치며 "니가 준재 아이가?" 하는 사람도 없었다.

씁쓸하고 허탈한 기분으로 다방을 나섰다.
집에 온 후 전화번호부를 뒤적였다.

세월이 엄청 흘러 내가 친구들 이름을 잊어버린 탓도 있겠지만 알만한 이름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진주여고 동창회로 전화하여 나의 첫사랑 일수도 있는 어느 여인의 이름을 대고

 전화번호를 좀 달라했다. 거절 당했다. 이름이 없다고 하면서.
세월을 50여년 거슬러 올라간다. 내가 진주사범 병설 중학교 2학년 가을 때다.

그때 부산에서 있을 원정 배구시합 준비차 연습하다 느즈막히 교정을 나서고 있었다.

교정 입구 양옆으로 나란히 서있는 벚꽃나무의 낙엽이 우수수 떨어져 있었고

내 앞에 홀로 교복을 입고 낙엽을 밟으며 걸어가는 여학생이 보였다.
낙엽, 늦가을, 낙엽을 밟고가는 세라복의 여학생 뒷모습-

 내게는 한폭의 그림 같았고 나도 몰래 그녀의 뒤를 밟으며 따라가고 있었다.
그 후로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어린 연인이 되어 고등학교를 마쳤다.

그러나 그녀는 대학진학을 포기,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일찍감치 시집을 가버렸다.
그녀의 고등학교 동창회를 통해 전화번호를 물었으나, 빈손으로 돌아섰던 것이다.
강산이 두번쯤 변할 세월이 지난 후 찾은 고향이라 인걸도 온데 간데 없었다.

그것이 나의 고향이라고 찾아갔던 진주였다. 
밀란 쿤데라의 말이 맞았다.

향수란 지금 어떻게 변해 있는지도 모르는 무지(Ignorance)에서 비롯,

추억이랍시고 회억 속에, 기억 속에 있는 옛 산천, 옛 집, 옛 여인을 찾아 나섰던 것이었다.
떠나기 전날, 남강다리를 건너며 시인이었던 나의 친구가 교각을 지나는 강물을 보고

 "어느 여인의 머리를 빗질하고 있었다"던 그 강물을 쳐다보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다짐하던 고향 방문이었다.
밀란쿤데라의 소설 <향수>를 다시 원용하면,

 그것은 마치 소설의 주인공 이레나(Irena)가 조국 체코를 떠나 프랑스에 살다가

 20년 만에 프라하(Prague)를 찾았다가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는 그런 허탈이었을까?
두개의 세계 속에 살아가기가 참 힘들다.

두 개의 세계란 여기 살고 있는 미국과 떠나온  고국 대한민국이다.

나는 지금 뉴욕에 있는 내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다.

 나의 모든 감각과 정서를 사로잡고 놓아 주지 않는 고향, 그리고 고국.

 생각 따로, 머리 따로, 몸 따로 놀 듯,

 다시는 찾아가지 않으리라던 그 고국에 내 마음을 다 쏟아내고 있다.
머잖아 이 글이 신문 지상에 나갈 때 쯤이면 고국은 새로운 대통령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으리.

누가 대통령이 되든 향수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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