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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둥 북춤

2015.06.22 16:43

목향 Views:4307

문둥 북춤

鄭 木 日

 

덩기덕-- 덩더러러러-- 쿵기덕-- 쿵더러러러--

굿거리장단이 흐른다. 왁자지껄한 굿판에 문둥탈이 나와 춤을 춘다. 얼굴에 쓴 문둥탈은 고성오광대의 어느 탈보다 크다. 살점이 뭉개지고 울퉁불퉁 일그러진 얼굴이 보기에도 징그럽다. 검은 천으로 더덕더덕 기운 옷차림새는 그냥 입었다기보다 걸쳐놓은 듯하다. 한 쪽 발은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이다. 허리엔 쪽박 한 개와 짚신 한 짝이 궁상스럽게 매달려 대롱거린다. 배 구멍과 앞가슴을 드러낸 채 문둥이는 굿거리장단에 맞춰 몸을 움직거린다.

문둥 북춤은 손가락이 오그라붙어 손가락의 섬세한 움직임을 살릴 수 없다. 병들고 굶주림 에 지쳐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조차 없다. 몸에는 땟국이 흐르는 거렁뱅이의 옷차림새이다.

 

덩기덕-- 덩더러러러-- 쿵기덕-- 쿵더러러러--

굿거리장단이 계속된다. 고성오광대는 문둥 북춤으로 시작된다. 슬픔의 춤이며, 한의 춤이다. 손과 발이 떨리고 팔과 다리가 떨리고 온 몸이 떨리는 춤이다. 오그라붙은 손을 허공에 휘저으며 몸서리치는 모습은 처절하기조차 하다. 팔을 들어 공중으로 치켜 올리며 부르르 떠는 것은 하늘을 향해 한탄하며 뼈에 사무친 신음을 토해 내는 모습이다.

문둥 북춤은 가냘픈 손끝이 하늘거리어 멋과 흥을 불러일으키는 춤이 아니다. 한삼을 입어 손보다 더 아름답게 흐르는 선의 미를 얻어내고, 긴소매가 공간을 차고 날듯이 날리고 외씨버선의 맵시 있는 발놀림을 염두에 둔 춤은 더욱 아니다.

문둥 북춤은 절규의 춤이며 한탄과 비애의 춤이다. 가냘픈 손끝의 움직임이 아니라, 온몸으로 떨며 추는 춤이다. 누가 문둥이의 비애를 안단 말인가. 가장 불행한 자의 상징으로서 고성오광대는 문둥 북춤을 보여주고 있다.

 

덩기덕-- 덩더러러러-- 쿵기덕-- 쿵더러러러--

 

두 손으로 땅바닥에 놓인 소고를 잡으려고 하지만, 손가락이 오그라붙어 잡지 못한다. 문둥이는 땅을 치며 통탄한다. 슬픔의 끝에서 장단을 맞추고 눈물의 끝에서 소맷귀를 적신다. 소매로 눈물을 닦고 콧물을 닦는다. 소고를 치며 춤이나 한 번 춰 보고 싶다. 어둠과 절망 속에서, 얼마나 구박을 받으며 저주와 한탄 속에서 살아온 나날인가. 문둥이는 슬픔에 목이 메인다.

소고를 들어야지.’

죽지 못해 살아온 질긴 목숨, 춤이라도 한 번 춰 보고 싶다. 문둥 북춤은 대사가 없다. 혼자서 추는 춤이다. 한으로 응어리진 운명, 탄식의 인생을 어떻게 다 얘기하며 얘기해 본들 무슨 소용인가. 온몸을 떨면서 춤을 춘다. 탄식의 끝에서 춤을 춘다. 팔을 한 번 휘저을 때마다 한숨이 하늘에 닿고 발을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원망이 발자국마다 쌓인다. 문둥 북춤은 비애의 끝에서 추는 춤이다. 온몸으로 하늘과 땅을 저주하며 추는 춤이다. 마침내 문둥이는 소고를 집어 든다.

 

덩기덕-- 덩더러러러-- 쿵기덕-- 쿵더러러러--

 

굿거리장단이 빨라진다. 소고 채를 거구로 집어 들어 한 바퀴 돌려서 간신히 바로 잡는다. 소고를 들자, 흥이 솟구친다. 문둥이는 팔을 들어 하늘을 휘저으며 땅을 굴리며 춤을 춘다. 춤에 흥이 흐른다.

에라, 모르겠다! 춤이나 춰 보자.’

굿거리장단은 어느새 덧배기장단으로 바뀌고 있다. ‘- - 덩더- 쿵더-’ 가락의 호흡이 가빠지자, 춤사위는 신명으로 바뀌어 진다. 소고 가락이 에라, 모르겠다!’, ‘에라, 모르겠다!’ 이런 음율로 울리고 있다. 운명을 저주하고 한탄해 본들 무슨 소용인가. 죽으려 해도 죽을 수 없었던 목숨이 아닌가.

 

- - 덩더- 쿵더-

 

문둥 북춤은 어느덧 무욕의 경지에 빠져든다. 저주도 한탄도 슬픔도 사라졌다. 문둥 북춤은 무아지경에 빠진다. 이제 더 바랄 것도 없다. 체념한 지 오래다. 문둥 북춤은 체념의 끝에서 추는 춤이다. 무욕의 경지에서 자신을 잊는 춤이다. 한의 극치며, ()를 미()로 승화시킨 해탈의 춤이다.

 

- - 덩더- 쿵더-’

 

덧베기 장단의 맞춰 춤추는 춤꾼은 이제 문둥이가 아니다. 몸도 부자연스럽지 않다. 손과 다리도 떨리지 않는다. 팔을 휘저으며 소고를 치는 춤사위와, 발놀림이 경쾌하고 당당하기조차 하다.

문둥 북춤은 종내는 흥의 극치감에 빠진다. 문둥 북춤은 한의 넋풀이이며, 통한의 하소연으로 체념을 거쳐 무욕의 희열에 이르는 춤이다. 덧배기장단에 문둥이의 덧배기 춤이 벌어지면 얼 쑤!’, ‘좋다구경꾼들의 추임새가 더욱 흥을 돋운다. 고성오광대의 문둥 북춤을 보고 민중들은 한을 푼다. 이 춤에 한을 푸는 실꾸리가 있다. 마음에 겹겹이 쌓인 공감의 언어가 무언중에 서로의 가슴에 흘러서 관중들을 취하게 만든다. 문둥 북춤은 거리낌 없이 대담한 춤이다. ()의 넋풀이인 동시에 잠시 문둥이가 돼 절망 과 한탄의 신음을 토해 보는 순간이다.

고성오광대의 문둥 북춤은 너무 진지하고 애통스러워 처음에 관중들조차 소름끼치는 절망과 섬뜩스러운 추()를 실감하는 데서 시작된다. 하늘을 바라보고 통탄하고 눈물을 닦을 때, 관중들은 자신의 슬픔을 달래고, 오그라든 손으로 땅을 치 고 콧물을 닦을 때, 가슴에 쌓인 한을 녹인다. 우리 가슴의 한은 그대로 절망과 어둠이 아니다. 생명에 불을 지피는 불씨임을 알게 된다. 극한의 절망과 비애의 운명 속에서도 그대로 주저앉을 수 없는 강한 생명력의 맥박이 돼 주는 것이 한()임을 공감한다. 고성오광대의 문둥 북춤은 극한의 절망을 맛보고 그 어둠을 벗어버린 춤이다.

문둥 북춤의 기능인 P씨는 춤을 추고 나서 문둥탈을 벗으며 얼굴에 흐른 땀방울을 닦는다. 문둥 북춤은 불과 57분밖에 걸리지 않지만, 한 번 추고 나면 온몸이 땀으로 젖는다. 온 몸으로 떨면서 추기 때문에 힘이 든다고 한다. P씨는 소매 깃으로 눈시울을 닦는다. 문둥 북춤을 추면 너무 슬퍼서 울지 않으면 춤출 수 없다고 한다.

문둥 북춤은 가장 추한 춤인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춤이다. 문둥 북춤은 가장 슬픈 춤인 동시에 신명의 춤이다. 추를 미로 승화시킨 춤이며 슬픔을 환희로 승화시킨 춤이다.

 

() 문둥북춤- 무형 문화재 제7호인 고성오광대(固城 五廣大)의 제5과장(科場) 중 제1과장에 연희되는 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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