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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015.10.25 21:24

목향 Views:3085

 

11

정목일

 

 

11월은 가을의 영혼이 보이는 달, 앞모습보다 뒷모습이 보이고 텅 빈 내부가 보인다.

가을이 절정에 이르러 감동과 찬탄을 자아내지만, 그 뒷면에 고독과 고통의 표정이 보인다. 단풍은 생명의 아름다움과 일생의 절정을 보여주지만 사라지는 노을처럼 황홀하여서 눈물겹다.

 

11월은 삶으로 나타낼 수 있는 모든 빛깔의 표현 양식과 기법이 유감없이 드러난다. 가을이 보여주는 생명의 극치감, 풍요, 결실은 앞모습일 뿐이다. 가을은 삶의 빛깔을 완성하지만, 그 빛깔들을 해체해버린다. 낙엽이 날려 뒹굴고 색()은 무너져 내린다. 결실로써 풍요를 얻는 것만큼 버림으로써 마음을 비워낸다. 절정으로 치달은 것만큼 추락도 맞아야 한다.

 

11월엔 계절의 교차가 보인다. 단풍은 한순간의 장식에 불과하다. 삶의 수식일지 모르는 단풍을 걷어내고, 벌거숭이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고뇌의 몸살을 앎고 있는 모습이다. 빈자리가 보이고 사색과 침묵을 향해 눈을 감는 시간이 있다

 

11월은 존재의 참모습을 찿아 나서는 계절이다. 삶에는 명암이 있다. 화려함 뒤에는 허전함이 있고, 환희 뒤에는 눈물이 있다. 성장 속에는 추락의 아픔이 있다.

 

11월의 들판은 어느새 비어져 공허하고 나무들은 옷을 벗어버린다. 충만 속에서 느낄 수 없던 빈 것에서의 정갈함, 허허로움 속에 담긴 새로움의 세계가 보인다.

끓어오르던 열정을 식히고 사유의 눈이 깊어진다. 가을 끝 무렵, 어느새 노을이 지고 땅거미가 드리울 때처럼 돌아갈 곳을 떠올리게 한다.

 

11월은 가버리고 말면 다시 볼 수 없을 듯한 애잔함을 느끼게 한다. 인생의 궤적을 뒤돌아보게 하고, 자신이 걸어온 삶의 길 위에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떠나가고 싶는 달이다.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들과 결별하고, 가을 빈 들판 길을 걷고 싶다

 

11월은 바깥의 화려함보다도 내면의 절실함이 깃드는 달, 자신의 모습을 겨울에 비춰보며 가을을 전송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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