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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남강유등축제

2015.10.02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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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강 유등축제

鄭 木 日

 

진주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이 흐르고, 그 강물의 영혼을 밝히기 위해 해마다 유등을 띄운다. 남강에 오면 끓어오르는 눈물과 사무치는 그리움을 억제할 수 없다. 강은 땅의 젖줄이 되고 문화를 배태한 어머니의 모습이겠으나, 진주 남강은 그런 강만이 아니다. 민족의 가슴속으로 흐르는 애국 혼의 동맥이다.

남강 유등놀이는 1592년 시월 충무공 김시민(金時敏) 장군이 38백 여명에 지나지 않은 적은 병력으로 진주성을 침공한 2만여 왜군을 크게 무찔러 민족의 자존을 드높인 진주대첩을 거둘 때, 성 밖의 의병(義兵)과 지원군과의 군사 신호로 등불을 강물에 띄운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1593년 유월 12만의 왜군들이 다시 침공하여 진주성이 함락되었다. 의롭게 순절한 7만 병사를 비롯한 시민의 넋을 기리기 위해 남강에 유등을 띄웠다. 그 이후 유등놀이는 가정의 소망을 빌고 겨레의 안녕을 기원하는 행사로 전해져 내려왔다.

꽃다운 나이로 적장을 가슴에 안고 강물에 몸을 던진 논개의 넋을 본다. 적장을 두 손으로 옥죄었던 가락지의 힘을 느낀다. 어찌 논개 뿐이랴. 진주 남강 앞에 서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목숨을 버린 7만 순국선열들의 넋들이 흐르고 있다. 아무도 적 앞에 비겁하지 않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진주는 해마다 시월이면 유등 축제를 올린다. 7만 전몰자들의 넋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강물을 밝히는 것이다. 꽃등 안에 촛불을 켜고, 역사를 밝히고 강물의 영혼을 밝힌다.

촛불은 타오르며 가신 임들의 넋을 부르고, 7만의 순국 혼들은 깨어나 환한 미소로써 응답하는 유등축제! 어찌 단순한 놀이라 할 것인가. 강물에 바치는 민족의 꽃이요, 마음의 기도가 아니랴. 겨레의 마음을 모아 바치는 지극 정성의 시(), 노래이다.

남강 유등 축제는 유등만의 아름다움으로 눈부신 게 아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역사를 재현하는 의식이어서 거룩하다. 유등들이 강을 밝히고, 세계 곳곳의 유등들이 가신 임들의 넋을 위로한다.

남강 유등을 보면 아름다운 강이어서 눈물이 북 바쳐 오르고, 아픈 역사 때문에 피가 끓어오른다. 세상에서 제일 비참하고 슬펐던 강물은 이제 가장 화려하고 눈부신 강물이 되어 흐른다.

전쟁과 피비린내가 아닌, 평화와 번영의 축등으로 흐른다. 강과 역사와 유등이 만나 영원의 미()가 되는 모습이 남강 유등 축제이다.

이 세상에 남강만이 보일 수 있는 영원의 말, 생사를 초월하는 언어가 숨쉬는 시. 공간의 장()이 유등 축제이다.

유등 축제를 보려거든 영원의 강, 역사의 강인 남강의 영혼부터 만나야 한다.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려거든 가장 비통한 영혼을 보아야 한다. 영원한 사랑을 깨닫기 위해서는 목숨을 강물에 던져버린 이들의 넋을 보아야 한다.

강물은 어디서 흘러오는 것인가. 남강의 시원은 백두대간의 대미(大尾)를 장식하는 지리산이다. 상류엔 진양호가 조성되고 다목적댐이 있다. 진양호 전망대에 올라가면 지리산 만년 명상과 만날 수 있다. 침묵 속에 드러나는 지리산 연봉들의 표정들을 바라볼 수 있다. 푸른 하늘 아래 초록빛 호수 위로 여덟 겹인가, 아홉 겹인가 첩첩한 지리산 능선들이 기러기 떼들처럼 날개를 저으며 다가오는 듯하다. 신비가 깃든 태고의 모습을 대하는 순간이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산 능선들이 에워싸고 있다. 지리산 청계수들이 흐르다 잠시 모여 휴식을 취하는 곳이 진양호이다. 웅대, 화려. 섬세한 자연미(自然美)가 아니라, 고요하고 인자한 품성이 넘치며 깊고 부드러운 산수미(山水美)의 절경을 보여준다. 지리산 만년 고요와 신비가 만나 강물을 이룬 곳이다.

남강 유등을 보는 것은 그냥 화려한 불빛만을 보는 게 아니다. 지리산의 연봉과 그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강물의 모습을 보는 일이다. 그 강물이 역사 속에 어떻게 깊어졌는지를 보는 일이다.

남강에 와서 강물에 바치는 유등을 본다. 영원의 얼굴을 보며 하나의 촛불을 켜본다. 아름다움과 생명이란 일시적으로 흐르고 말면 자취조차 보이지 않을 뿐인데도, 남강에 오면 해마다 촛불을 켜고 다가오는 영원의 모습이 있다.

진주 남강이 거룩하고 아름다운 건 유등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대중들의 식지 않는 마음의 꽃 때문이다. 유등은 남강의 역사와 문화의 꽃들일 것이다. 이 꽃들은 시들지 않고, 대대손손 불 밝히며 강을 밝히고 역사를 밝힐 것이다. 민족의 마음을 밝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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