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15 18:12
김밥 한 줄
鄭 木 日
김밥 한 줄은 말줄임표(……).
간단명료하다. 설명이나 사족을 붙이지 않는다. 말의 울림이다. 침묵으로 감정을 억누르고 있다. 함부로 말할 수 없어 가슴 속에서만 숨 띄는 함축언어이다.
김밥 한 줄은 가장 간소한 한 끼이다. 30초 만에 차려진다. 김 한 장을 펴고 밥을 담은 다음 준비해둔 당근, 부친계란, 볶은 햄, 우엉, 시금치. 단무지를 넣고 말아 올리면 된다. 은박지를 깐 접시 위에 놓인 검은 김밥 한 줄….
김밥 토막들은 대열을 벗어나지 않고 반듯하다. 움직이는 듯 긴장과 생동감이 있다. 달려가는 전철 같다. 맥박이 뛰고 삶의 숨소리가 들려온다. 마음 놓고 먹는 따뜻한 밥과는 다른 느낌이다. 시계 초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심장이 띄는 지금 이 순간과 공간을 의식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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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은 지하철역 부근의 김밥 집에서 식사를 한다. 30분 후에 가까운 거리에 있는 평생교육원에 가기 위해서다. 탁자 위에 김치단지와 단무지단지가 있다. 손님들이 알아서 접시에 담아 먹는다. 식사대금 2천원을 통 안에 넣으면 된다.
김밥 집은 24시간 열려 있다. 김밥 집 탁자에 앉으면 편안하다. 이따금씩 지하철 지나가는 소리가 가슴을 울린다. 아침 손님들은 말쑥한 차림의 20대 직장인들이 대부분이다. 부근의 백화점이나 직장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이다.
가게 안에는 50대~60대 3인의 여성이 앞치마를 두른 채 김밥을 만들고 있다. 김밥 집이지만 음식 메뉴는 수십 가지에 달한다. 김밥 집은 언제나 열려 있는 밥집이다. 김밥 한 줄은 고속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의 고마운 식사 한 끼이며, 삶의 최소 열량이기도 하다.
김밥 한 줄은 나에겐 충분한 양(量)이다. 반(半) 줄을 시키는 사람도 있다. 김밥 한 줄의 식사는 말줄임표(……)만은 아닐 듯싶다. 간명한 한 끼의 식사에는 첨예한 의식의 맥박이 뛰고, 삶의 숨결이 느껴진다. 편안한 밥을 먹을 때는 반찬 투정도 해보지만, 김밥 한 줄을 먹을 때는 엄숙해지고 감사의 마음이 느껴지기도 한다.
김밥 한 줄은 발설하지 못한 말들의 표정이다. 다 토로하고 말면, 더 허전해질까봐 간절한 말 한 마디만 남겨 놓은 한 줄의 문장을 본다. 마음속으로 오래 남는 여운이나 향기, 그리움은 완료가 아니다. 김밥 한 줄을 먹으며 허위, 군더더기, 과장, 허세, 치장이 없는 문장을 바라본다.
김밥 한 줄을 앞에 놓고 하루의 출발선에 선다.
어떻게 김밥 한 줄 같은 문장에, 드러내지 않은 속내를 전할 수 있을까. 숨 가쁘게 전철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김밥 한 줄은 발설하고 싶지 않은 나의 절실한 삶의 말줄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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