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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산을 보며

2016.01.05 01:00

목향 Views:2401

겨울 산을 보며

鄭 木 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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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산은 삭발승의 묵언정진(黙言精進)이다.

만년 침묵 속에 있다. 눈보라에도 꼼짝달싹도 하지 않는다. 깨달음을 얻기까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침묵 속에 한 죽음을 이루려 한다. 영원 속에 숨을 놓아버리려 한다. 말을 얻으려 했지만 깨달음은 말이 아님을 알고 있다.

겨울산은 오장육부를 비워내고 있다. 자신도 존재도 버린다. 말하지 않는다. 눈으로 보지 않고 귀로 듣지 않는다. 말과 지식을 버린다. 허공이 되고자 한다.

 

겨울산은 침묵의 폭포수이다. 사정없이 절벽 위에서 뛰어내린다. 더 이상 길을 찾을 수도 없고, 머뭇거릴 수 없다. 자신이 길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됨을 알고 있다. 바랄 것도 버릴 것도 없어 편안한 얼굴이다.

침묵 속에 진실의 길이 있다. 천년만년을 견뎌내는 건 침묵뿐이다. 만년 침묵의 일부이면 그만이다. 영원 속의 한 숨결이면 족하다. 거추장스런 장식 따위는 버린 지 오래다. 절제된 문장 한 줄도 필요 없다. 수식이나 과장을 모두 떨쳐버린 데서의 깨달음. 정신의 뼈와 근육을 드러내놓고 있다. 능선과 계곡, 원근과 굴곡으로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침묵 속에는 내면으로 흐르는 말이 있다.

겨울산은 내면의 말마저 지워 버린다. 침묵이 되고 진실과 깨달음, 그 자체가 된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것을 스스로 알아 버린다.

 

겨울산은 근육질만 있는 게 아니다.

여성의 둔부, 가슴의 부드러운 선들을 내놓고 있다. 눈 덮인 능선은 한없이 정결하고 부드러워 손으로 만져 보고픈 충동을 느낀다. 진실을 드러내는 것은 용기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삶을 지탱해주는 뼈와 근육이 있어야 한다. 흔들리지 않는 만년 침묵의 뼈대.

겨울산은 묵상의 얼굴이다.

나에겐 침묵의 정수리가 보이지 않고, 정신의 뼈가 드러나지 않는다. 눈보라 속에 모든 것을 다 떨쳐버리고 명상의 뼈들을 드러낼 수 없을까. 눈보라 속에 얼어붙은 겨울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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