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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의 歲寒圖

2015.12.17 20:33

귀담 Views:1406

                   " 세한도 사진"


ㅅ1.jpg


국보 180호 歲寒圖는 어떤 작품인가?

세한도(歲寒圖)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 추사 김정희의 인물 배경과

세한도가 그려진 연유를 알아 보고져 한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함께 

서예작품으로서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자.

세한도는  고송(古松) 한 그루와 잣나무 한 그루가 눈내린 겨울 오두막집을 기대듯 서 있고

옆에 또다른 두 그루 잣나무가 한겨울 저만치 추위를 견디며 서 있다.

그리고 발문으로 한문이 쓰여진 언뜻 보기엔 극히 평범한 그림이다.

새한도는 3장으로 이어붙여져 있으며 그림과 함께 작품의 발문이 적힌

아주 독특한 형식이다.


세한도 탄생 역사적 배경


 * 추사 김정희( 1786~ 1856) 는 누구인가?

추사는 이조 정조10년 ~ 철종7년 때 문신학자로 

字는 원춘 號 - 추사. 완당.예당.노과. 시암으로 불리었다.

추사체라는 귀중한 서체를 남긴 서예가이다

전통학문인 경학과 금석학에 뛰어난 지식과 경륜을 가진 

학자이다. 증조부 김한신이 영조임금의 사위 였으며, 부친 김노경은 __ 벼슬로 

왕실의 친척인 셈이다. 학문을 익힐 환경이 좋았던 것으로 보인다.

24세 때 부친 김노경을 따라 연경(燕京)에 가게 되는데 

그 때 靑나라 거유(巨儒)  담계 (覃溪) 옹방강(翁方綱)을 만나게 된다. 

담계는 송나라 문인 소동파의 저술과 글씨 등 자료를 완당에게 주었다고 한다.

그때 본 "소동파의 언송도(偃松圖)"가 후에 "세한도"의 구상이 아닌가 싶다.

"古松偃蓋全綺戶" -- 고송이 나뭇가지를 드리우고 비스듬히 기대어 있네"

바로 소동파의 <언송도>에 대한 담계의 "언송도찬문"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1840년 (헌종6년) <윤상도(尹尙度)의 옥사(獄事)>에 연루되어 제주도에서 9년간 귀향살이를 하게 된다.

제자 이상적은 2번 제주도로 거너가 문안하였고 역관의 직함으로 수시로 연경을 다녔다.

그 때 귀한 자료 <만학집> 8권과 <대운산방문고>와 <황청경세문편> 120권을 유배생활하는 완당에게 선물했다.

완당은 제자의 호의에 감동하여   그 고마운 마음을 적어 선물하니,

오늘날 국보 180호의 "세한도"가 탄생하게 된다. 


* 세한도에 얽힌 작품 비화 


"歲寒圖"는 그림 자체 길이는 108.3cm 이지만 청나라 유생 16명완당 제자및 소장가 등의 4명의 


詩와 文이 첨가되어 두루마리 형태가 되었다. 작품전체 크기는 가로 69.2cm- 세로 23cm 이다.


전체를 보려면 10m가 훨씬 넘는 전시용 쇼케이스가 필요하다고 한다.


1974년 12월31 국보 제 180호로 지정 되었다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는 阮堂을 괄시하지 않고 두 번이나 찿아주고, 


晩學과 大雲의 두 서책을 구해주고, 자신의 글  藕耕文을 보내 주는등 스승에 대한충심을 


보이자 감동한 나머지 그의 인품을 松柏의 지조에 비유하여 그림과 書로 표현해 선물했다.


이듬 해 우선은 연경에 가서 완당의 근황을 知友들에게 전하고 詩友吳贊에 참석해 <세한도>를


보여주고 자랑하니 작품에 감동 받은 장악진, 조진각, 조동건 등 16명이 題贊을 하였다.


당대 최고의 문사들의 제찬이 합장 되면서 :세한도"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고, 


제주도를 방문한 이상적은 완당에게 보여주며 자랑하였다 한다. 이리하여 "세한도"는


藕船 집안의 家寶로 전해져 내려왔고, 그가 1865년 죽자 제자인 김석준에게 옮겨 갔다.


그는 <새한도>의 합장된 16명의 靑儒들의 題贊 속에 자신의 追贊을 삽입하였다.


이후 아들이 물러 받았지만 일제시대 경성제대 교수인 "후지스카"에게 넘어가게 된다.


뒤에 젊은 서예가이며 골동품 수장가였던 손재향씨가 소유자를 알게 되어 유명한 후지스카와 소전의


수장 씨름이 시작된다. 1943년 소전은 후지스카 지카시로 부터 새한도를 구입하려고 했으나 실패했고


1944년 여름 2차대전 막바지에 동경으로 다시 날아가 병석에 누운 그를 지극 정성으로 설득하여 결국


세한도는 조선으로 돌아왔다. 소전은 귀국 즉시 서화감식가 이며 대수장가인 吳世昌을 찾아가 세한도를


보이고 인사를 하자 즉석에서 '戰禍를 무릅쓰고 死地에 들어가 우리의 국보를 찿아 왔노라" 고 題를 썼다.


훗날 정인보.이시영의 贊이 붙어 김석준과 함께 총 20명의 贊이 실리게 되었다. 이후 소전은 국회의원에 출마하여


선거자금이 쪼달리자 이근태에게 저당잡혔다가 끝내 찿지 못하고 개성갑부인 미술소장가孫世基에게 넘어갔고,


지금은 그의 아들인 孫昌根이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 작품 발문 주요점-개략


                세한도2.jpg    

                                                         " 발문 사진 "   




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也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야

< 날씨가 추워진 이후 낙엽이 진 후에야 송백의 푸르름을 알게 된다>

<논어> 자한편에 나오는구절이다.

비유의 말로 "사람이 시련과 어려움을 겪은 후에야 참 모습을 볼 수 있다"

역관 이상적(李尙迪)을 칭송한 것으로 "송백지무"의공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이상적을 칭송하였다.  

 

去年以晩學大雲二書寄來  (거년이만학대운이서기래)       지난해 만학.대운 두 책을 부쳐오고


今年又以藕耕文編寄來      ( 금년우이우경문편기래 )         금년에 또 우경문편이라는 글을 부쳐오니


此皆非世之常有                  ( 차개비세지상유 )                      이는 모두 세상에 흔히 있는 일이 아니요


購之千萬理之遠                  (구지천만리지원 )                       천만리 먼 곳에서 구입한 것으로


積有年而得之                      ( 적유년이득지  )                         여러 해 걸려서 얻은 것이라

  

非一時之事也                      ( 비일시지사야 )                          흔한 일이 아니다.


且世之滔滔                          (차세지도도 )                               또 세상의 도도함이


惟權利之是趨爲之             ( 유권리지시추위지 )                  오직 권세와 이익을 추향하는데   (唯:오직 )


費心費力如此                     ( 비심비력여차 )                           마음 쓰고 힘을 씀이 이와 같으니


而不以歸之權利                 ( 이부이귀지권리 )                       권리로 돌아가지 않고


乃歸之海外蕉萃枯槁 之人 ( 내귀지해외초췌고고지인 )     이에 바다 밖의 초췌고고한 사람에게 돌아옴이


如世之趨權利者                 ( 여세지추권리자 )                      세상의 권리를 추향하는 자 같다




太史公云                               (태사공운 )                                             태사공이 이르기를


以權利合者 權利盡以交疎  ( 이권리합자 권리진이교소)               권리로 합한자는 권리가 다하면 사귐이 성글어진다 했는데 


君亦世之滔滔中一人   ( 군역세지도도중일인)                                君도 세상의 도도한 흐름의 하나로


其有超然自拔於滔滔權利之外 ( 기유초연자발오도도권리지외)  그 초연한 도도한 권리 밖에 스스로 벗어나니


不以權利親我耶                 ( 부이권리친아야)                                   나를 권리로 보지 않음인가


太史公之言非耶                 ( 태사공지언비야)                                   태사공의 말씀이 틀린 것인가




公子曰                                     ( 공자왈  )                                                  공자가 말씀 하시기를

 

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        ( 세한연후지송백지조 )                           세한연후 잎이 모두 떨어진 후에 송백을 안다 하였으니


松柏是官四時而不凋者        ( 송백시관사시이부조자)                        송백은 사계절 시들지 않는 것으로


歲寒以前一松柏也                ( 세한이전일송백야)                                 세한 이전에도 한결같은 송백이요


歲寒以後一松柏也                ( 세한이후일송백야)                                 세한이후에도 한결같은 송백인데


聖人特稱之於歲寒之後        (성인특칭지어세한지후)                          성인은 특히 세한 이후를 일컫고 

 

今君之於我由前而無可焉    ( 금군지어아유전이무가언)                     지금 그대의 나에 대함이 전보다 더함이 없고


由後而無損焉                        ( 유후이무손언)                                          이후에도 덜함이 없다


然由前之君無可稱                ( 연유전지군무가칭)                                  이전에는 그대를 일컬을 것이 없어도


由後之君 亦可見稱 於聖人也耶 (유후지군 역가견칭 성인야야)         이후로는 그대를 성인으로 가히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




烏戶 西京淳厚之世                  (오호 서경순후지세)                               오호! 서경의 순박하고 후덕한 세태여.


以汲鄭之賢 賓客與之盛衰      ( 이급정지현 빈객여지성쇠)                  정당시의 어짐으로도 빈객은 성하고 쇠함이여


如下丕榜門 迫切之極矣非夫  ( 여하비방문 박절지극의비부)              하비 방문 같은 것은 박절한 것의 극이로다 슬프다.




阮堂老人書                                     완당 노인이 쓰다



발문의 끝에 쓴 적공(翟公의 고사


漢나라 때 적공이 정위(廷慰)가 되자 찿아오는 사람이 門前成市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가 실각되자 이네 그의 대문에는 찬바람만 불고 인적이 뚝 끊어졌다.


그 뒤 그가 다시 정위(廷慰)에 복귀하자 또 옛날처럼 사람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이에 그는 대문에다 이렇게 방(榜)을 써 붙였다. 염량세태를 신랄히 꼬집은 글이다.



一生一死    乃知交情  


一賓一富    乃知交態


一貴一賤    交情乃見


" 죽고 사는 갈림길에 서 봐야 정을 나누는 것을 알게 되고,  사업에서 망하고 흉해봐야 교태를 알게 되며,

     

  벼슬길에서 귀천을 겪어봐야 교정이 나타난다"         [ 史記 汲鄭列傳 ]






* 역관 이상적의 답신내용


"황량한 벌판에 서 있는 소나무와 잣나무. 꺽이거나 낙엽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것은 

선생님의 의연한 자태. 그것은 어떤 세파에도 굴하지 않으며 누구의 중상모략에도 

변명하지 않고 당당히 버티고 있는 임 향한 일편단심의 자태입니다"




*송백지무(松柏之茂)-송백지우(松柏之友)- 송백지절(松柏之節)


  왜 세한도가 명작이 되었을까?


그림 자체로만 본다면 문인화의 초보단계인 습작품에 불과하다는 것이 미술계의 대체적 평가다.

그렇다면  어떻게 명작으로 평가 받고 있는  것인가?

"歲寒圖"에 대한 기존 해석은 세한도를 통해 김정희의 삶과 유배생활을 읽어 내려고 한 것이다.

그림의 기교나 형식보다는 내용과 정신을 중요시한 문인화의 진수를 보여주며 완당의 "학예일치"

혹은 "서화일치"의 경지를 보여 준다는 것이 대체적 결론이다.

그럼 세한도의 작품 구상은 창작인가, 모방인가

이런 논란은 유치한 발상이다. 문학이나 미술이나 모든 예술은 창작 동기가 있기 때문이다.

"세한도"가 소동파의 "언송도" 에 뿌리를 둔 것이라고 하는데는 이해가 간다. 또 스승 옹방강의

"언송도 찬문"에 영향을 받았다는데도 일가견이 있다. 이러한 사례는 서양 미술사에도 많이 발견된다.

유명한 고흐의 명작 "별이 빛나는 밤"도 한 시인의 시에서 비롯했다는 설도 있다.

결론적으로 완당이 남긴 "새한도"가 국내외 20여명의 詩와 書의 찬사가 첨가되어 역사성을 지녔고,

작품 구성은 물론 書는 명필에 해당하는 것이라 하겠다

"古文眞寶" 의 어떤 글과도 비교해도 좋은 명작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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