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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에 찍힌 역사의 두 쉼표

2016.03.05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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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에 찍힌 역사의 두 쉼표

鄭 木 日

 

영월에 가서 두 무덤을 보았다.

김삿갓 시인의 무덤과 단종의 무덤이었다. 무덤은 삶의 마침표(終止符)로 망각의 뒤안길에 놓여있는 것이지만, 영월의 두 무덤은 민족의 가슴에 남아있는 한 맺힌 역사의 쉼표(休止符)였다. 마침표는 끝남으로 멈춘 것이지만, 쉼표는 휴식과 생각할 틈을 주며 숨을 길게 내쉬고 있었다.

영월에서 동강과 서강이 합수(合水)하여 남한강이 되는 것을 보았다. 김삿갓 무덤과 단종의 무덤이 두물머리에 와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두 무덤은 끝남과 망각의 표식이 아니라, 다시금 생각하며 떠올려 보고, 되새김질 해보아야 할 시발점일 듯싶었다.

영월의 두 무덤이 어째서 죽음의 집이 아니고, 아직도 숨을 쉬는 삶의 표식이 돼 있는 것일까. 강원도 깊은 산속의 두 무덤이 눈을 감지 못하고 굽이굽이 만년을 흐르는 동강과 서강이 만나 가슴을 안고 해후하는 광경을 보고 있는가.

영월의 두 무덤은 한()의 상징이다. 설움의 덩이가 맺히고 쌓이면 한이 된다. 억울함, 설움은 민초들의 공감대가 된다. 홍경래 난에 연루된 조부를 비판한 시()로 장원 급제한 김병연은 뒤늦게 이 사실을 어머니로부터 듣고서 조상을 욕한 것이 부끄러워 삿갓을 쓰고 삼천리 방방곡곡을 유랑한다. 술 한 잔에 시 한수로 떠돌던 시인 김병연. 사대부 집안에서 역적 집안으로, 구걸하며 살아가는 신세로 전락한 그였다. 발길 머무는 곳마다 한과 눈물의 시를 남겨 놓았다.

조산시대엔 시를 쓰거나 읊는다는 자체가 특권층의 과시나 다름없던 시절이었다. 시인들은 대개 사대사상에 젖어 있었고, 충효(忠孝) 사상에 젖어 있었다. 김병연은 조부로 말미암아 반역 집안이 되어, () 사상에서 벗어남으로써 출세의 길이 막히고 말았다.

그가 택한 인생길은 방랑 시인이다. 시로써 술과 밥, 숙식을 해결한 우리나라 최초의 전업 시인이었다. 관료와 선비들의 시가 충효 이데올르기와 음풍영월에 벗어나지 않은 영역에 머물고 있을 무렵, 김병연은 조선 삼천리 곳곳을 걸어서 서민 삶의 현장과 애환과 탐관오리의 부정부패를 비판하고 풍자하는 시를 쓰고 읊었다. 우리나라에서 첫 번째로 진정한 참여시, 현장시, 민중시를 썼던 시인이었다. 비판과 풍자와 해학으로써 민중들의 가슴을 달래고 위무해주었다.

그의 시엔 서민들의 애환과 눈물과 민중의 한이 깃들어 있다. 술과 시와 방랑으로 일생을 보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시를 읊을 수 있는 자유 밖에 없었다. 그의 삶과 운명은 장대한 서사시나 다름없다. 나그네로 세상을 떠돌다가 전남 화순군 동복(同福)에서 객사하여 그 곳에 무덤을 남겼다. 3년 후 둘째 아들이 지금의 장소인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로 이장하게 되었다. 어쩌면 무덤을 남긴다는 자체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 아닌가 싶다.

단종의 유배지인 청사포는 천연의 유배지였다. 삼면이 강물로 에워싸고 뒤편 한 면은 바위 절벽이 가로막고 있어서 배가 없으면 오갈 데 없는 창살 없는 감옥이었다. 청사포 송림은 청청했다. 적송인지라 붉은 둥치와 녹색의 솔가지 잎들이 보색이 되어 강물과 절묘하게 어울렸다. , 청사포의 모습을 한마디 말로 응축하여 보라면 아름다운 자연의 쉼표라고 말하고 싶다.

단종은 1457년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계획이 발각되어, 서인으로 감봉되었으며 10월에 17세의 나이로 죽음을 당했다. 단종이 죽자 후환이 두려워 아무도 시신을 거두는 사람이 없었다. 영월호장 엄홍도가 관을 준비하여 시신을 거두었다. 숙종 24(1698)에 복위되어 묘호를 단종이라 하고, 능은 장릉이라 했다.

영월은 눈으로만 보여주는 경치 만으로가 아니라, 가슴 속에서 뜨거운 눈물로 치솟는 한과 설움의 절경으로 기억해야 할 듯하다. 단종의 눈물이 민중의 한이 되어 송림은 더 푸름을 머금고, 강물은 더 짙은 빛깔로 감돌아 흐른다. 한은 설움으로 풀리지 않는 법이다. 굿으로 풀고 축제로 풀어내야 한다. 영월의 비극적인 두 인물, 김삿갓과 단종의 일생과 한은 민중에 의해 추모와 그리움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김삿갓문학축제와 단종문화제가 다름 아닌 민중의 역사와 마음의 한풀이다. 그냥 눈 감고 넘길 수 없는 비극과 한을 가진 이의 삶과 죽음은 민중의 마음속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음을 본다. 김삿갓, 단종의 삶과 죽음을 민중은 한풀이인 축제를 통해 승화시키고 내일을 창조하려 한다.

영월에 와서 산자수명(山紫水明)의 강원도 경치에 반하기도 했지만, 두 무덤을 보고서 역사의 쉼표를 읽었다. 민중의 애환과 한풀이를 보았다. 깊은 한만은 그대로 두지 못하고 민중의 마음으로 풀어서 잠재워 주는 것임을 영월에 와서 보았다.

동강과 서강이 만나 합수(合水)를 이뤄내 남한강이 됨을 본다. 영월에 가면 산맥을 휘감고 동강과 서강이 흘러와 만나고, 김삿갓 시인과 단종의 한()이 만나서 역사의 쉼표가 된다. 시들지 않는 역사의 꽃향기가 된다. 민중은 두 강물과 두 인물의 혼과 한을 가슴에 안아 시와 노래의 흥겨운 축제로 꽃피워 낸다.

, 영월의 동강 서강 물결 위에, 김삿갓의 시와 단종의 한이 흐른다. 아름다워서 눈물겨운 절경, 그 속에 민중이 피워내는 역사 숨결을 이은 축제가 꽃을 피우고 있다.

 

   < 박근혜 대통령 정목일 수필가 와 함께>박근혜대표_인터뷰_028.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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