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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구멍

2016.09.22 03:01

목향 Views:356

 

아름다운 구멍

鄭 木 日

 

 

속이 빈 대나무를 보면 구멍을 내고 싶다.

불에 시뻘겋게 달군 쇠꼬챙이로 대나무에 몇 개의 구멍을 뚫었으면 한다. 나도 눈을 감고 대나무가 되고 싶다. 오장육부가 타 들어가고, 뼈가 으스러져도 견뎌내야 한다. 하나의 단소거나 대금이 될 수만 있다면, 인내의 극한까지 참아내야 한다. 마음이 텅텅 비워져야, 속이 타는 불기운을 참아내야, 음률을 맞춰낼 수 있는 몇 개의 구멍이 뚫리고 목관악기가 될 수 있다.

입에 대고 불면 어떤 상념이나 느낌도 맑게 은은히 빚어내 영원 속으로 흘려보낼 수 있었으면 한다. 손가락 끝으로 닫았다 여는 구멍 몇 개로 달과 별에게도 닿고, 어떤 근심이라도 지우며, 욕망도 부드럽게 쓰다듬어 잠재우고 싶다. 나는 하나의 목관악기이고 싶다.


티끌 하나 묻지 않은 연적이었으면 한다. 이른 새벽 먼저 떠온 샘물로 채워두고 싶다. 오랜 명상으로 넉넉해져 담담해지고 싶다. 연적은 마음을 담아 놓은 그릇이다. 연적엔 구명이 하나 있다. 조그만 숨구멍으로 때를 기다리는 그릇이다. 연적의 물이 벼루 위에 흘러 먹물이 될 때, 시가 되고 문장이 된다. 사군자(四君子), 화조(花鳥), 산수도(山水圖)가 된다.

물 채워둔 연적, 고요의 한 가운데 생각의 심연을 담아둔 마음의 그릇이고 싶다.


연꽃을 피우는 연근(蓮根)엔 구멍이 송송 나있다. 식사할 적에 반찬으로 먹기도 하지만, 진흙 속에 뿌리를 박고 연꽃을 피우려면 숨이 막히지 않게 구멍이 있어야 한다. 맛을 보면 사근사근 씹히는 것이 은근하고 담담하다. 진흙구덩이 속에서 묻혔을망정 깨달음의 꽃을 피워내기 위해서, 기구의 정성을 다하는 연뿌리의 구멍들을 본다. 이 구멍들이 있었기에 연꽃의 눈부심과 향기가 있다.

 

광장에 뿜어 오르는 분수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마음을 청신하게 적셔준다. 햇살 눈부신 날에는 무지개를 만들기도 한다. 나도 한 줄기 물이 되어 푸른 하늘로 치솟아 무지개가 되고 싶다. 물을 뿜어 올리기 위해선 숨어있는 작은 구멍들이 있어야 한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구멍이 있기에 숨을 쉬고, 세상과 소통한다. 나는 세상의 아름다움과 닿는 지혜의 눈, , 코가 있었으면 한다. 욕심을 버려 마음을 텅텅 비워놓아야, 삶의 고난과 고통을 참아내야 아름다운 구멍을 낼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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