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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한 봄날

2014.05.09 16:57

귀담 Views: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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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한 봄날     


  

멍청하게, 아까시아 잎 돋고

멍청하게, 목련꽃잎 떨어지네.

-- 두고 온 고향도 셀 수 없어

몇 번째 타향에서 맞는 봄인가.


인생의 따스한 봄볕 내리는 곳

멍청하게 꽃잎 지는데

머리 위엔 세월의 파리채

무섭고 사납게 지나 가누나


내 살아온 길

되돌아 가는 봄날

멍청하게 꽃잎만 지네

꽃잎만 지네.


올해도 봄날 간다고 또

지난해 부엉이 목청 돋우고

뒷숲 찔레꽃 가슴 타네.


작년 월동에 막눈 쏟아지는 날

지팡이 집고 옹이 속으로

타박타박 입신한 할머니

떡잎 밀고 나오시네

송곳송곳 못다한 정(情)

이승의 푸른꿈 적시네

굽은 등 펴시는 할머니 숨결

보리밭 흔들흔들 눈물같은 생(生).


내 여기 있소!

보고파 그리운 사람

금방 뛰쳐 나올것만 같은

잃어버린 우리들의 희망

돌아오시는 봄날

이 황홀하고  멍청한 봄날이여.




 



詩話

태양과 달의 율려 속에 무력한 우리는 또 봄을 맞았다.

봄만 되면 나는 왜 이리도 아픈가.

작년 4월 12일 나는 사랑하는 <라면>을 잃었다. 그리고

아픔이 사라지기도 전에 4월16일 세월호의 눈물어린 사고 소식을 접했다.

잔인한 4월 -- 그 아픔으로 멍청해진 사람들.

그 넋잃은 사람들을 버리고  거대한  바퀴가 돌아가는 소리.

봄의 소리를 듣는다.


잔인하고, 눈물어린 멍청한 봄날이다.


 

 


귀담  김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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