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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마시다 취하다

2017.06.27 03:44

귀담 Views:1473


홀로 마시다 취하니


-- 陶淵明 --

 

도연명(陶淵明)처럼 술을 좋아하던 이가 있을까.

  ‘술은 시를 낚는 낚시바늘이요, 근심을 쓸어내는 빗자루’라고 소동파가 일찍이 간파한 바 있다.

그래서 도연명도 술을 좋아했던 것일까.

술 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문학적으로 위대한 공헌을 했는지도 모른다.

도연명도, 이태백도, 소동파도 그들에게 술이 없었다면

인류에 회자되는 그들의 시구가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술은 그들에게 말없는 벗이었으며, 출렁이는 감정을 가라앉혀 주는 진정제였을 것이며,

문학의 산실 노릇도 톡톡히 해냈던 것 같다.

중국의 현대 작가 임어당은 「술과 술좌석에 대하여」에서

“봄 술은 정원에서, 여름 술은 들에서, 가을 술은 쪽배 위에서, 겨울 술은 집에 틀어박혀서,

밤 술은 달빛 아래서” 마시는 것이 좋다고 했다.

이처럼 낭만적이고 평화로운 술자리에서 술을 마신다면

누구라도 시인이 안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도연명은 가을 술을 쪽배 대신에 그의 집 뜰에서, 멀리 남산이 바라보이고 국화꽃이 피어 있는

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술상을 벌였을 것이다.


가을 국화꽃이 아름다워, 이슬 머금은 꽃잎을 따서

근심 잊게 하는 술에 띄워 마시니, 속세 버린 마음 더욱 멀어지네

하나의 술잔으로 홀로 마시다 취하니,

잔이 다하면 술항아리 저절로 기울어지노라

날 저물고 만물이 다 쉴 무렵, 집을 찾는 날새 숲으로 날며 우네

동헌 아래에서 후련하게 휘파람 부니, 다시금 참 삶을 얻은 듯하네


秋菊有佳色 裛露掇其英 汎此忘憂物 遠我遺世情

一觴雖獨進 盃盡壺自傾 日入群動息 歸鳥趨林鳴

嘯傲東軒下 聊復得此生

           ―「잡시(雜詩)」, 도연명--


가을 술에는 이슬 머금은 꽃잎을 띄우고, 봄 술에는 동산의 나물 뜯어 안주를 마련하고 마셨다는 멋스러운 시인이 도연명이다. 기쁜 일이 있을 때는 말술을 이웃들과 함께 마시고, 동쪽 언덕에 씨 뿌리고 싹이 터 그 밭에 호미 메고 다니기 싫증날 때는 간간이 탁주 들며 즐거워한다는 전원시인이다. 그에게는 다섯 아들, 서(舒)·(宣)·(雍)·(端)·(通)이 있었는데, 한결같이 글공부를 싫어하고 불초한 것을 아버지로서 가슴 아파하며 또 술 한 잔을 기울였다고 했다. 이래도 한 잔, 저래도 한 잔, 술은 그의 둘도 없는 친구였다.


그는 성품이 담백하고 조용하며 친구 사귀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술이 있는 자리라면 주인과 면식이 없는 자리임에도 가리지 않고 나가서 즐겼다 했다.

이런 점이 그의 약점이라면 약점이었을 것이다.

도 연명이 한번은 9월 9일을 맞이하여 술이 없자

집 동쪽 울타리 국화꽃밭에서 꽃 한 줌을 꺾어 쥐고

망연히 앉아 있었다. 얼마 후 흰옷 입은 사람이 오는 것이 보였는데,

이는 바로 강주자사 왕홍이 보낸 술을 가지고 오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실컷 마셨다고 했다.

왕홍은 도연명과 깊이 사귀고자 원했으나 도연명이 교제하기를 꺼려하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술에 얽힌 일화가 또 하나 있다.

도연명이 벼슬살이를 하고 있을 때, 그 고을 책임자가 인사를 하러 왔다.

마침 익은 술이 있으므로 도연명은 자신의 머리에 쓴 갈건을 벗어 술을 거르더니

다시 머리에 썼다고 했다.

옛 부터 머리에 쓰는 모자는 귀히 여기기 마련이거늘, 술 거르는 것은 무슨 일이며

다시 썼다 함은 또 어인   일인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그의 행동은 일상을 뛰어넘은 파격이다.

형식을 싫어하고 질박한 그의 성품으로 미루어 있을 법도 한 일이겠으나,

그 시절에도 그런 일이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기에 마을에 소문으로 떠돌다가 일화로 적혀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다가 우리에게까지 알려진 것이 아닌지.

         『진서(晋書)』 「도잠전」에는 도연명이 머리에 녹주건(漉酒巾)을 쓰고 다녔다고 기록되어 있다.

         녹주건이란 어떻게 생긴 것일까.

(宋)나라 시인 사유반(謝幼槃)이 쓴 「도연명사진도」에는

그 시절 도연명의 모습이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도연명은 그때 심양의 시상촌, 그의 고향으로 내려가 전원생활을 하고 있었다.

다섯 번의 출사(出仕)를 마지막으로 팽택 현령을 내던지고,

그의 나이 41세 되던 405년 11월, 그 유명한 「귀거래사」를 읊으며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 시절 청빈한 삶 속에서도 시(詩)·(琴)·(酒)를 즐기며 세속의 영리에 집착하지 않고

유유자적하던 때의 모습이리라.


도연명은 심양의 고향마을로 돌아가더니

명아주 지팡이 짚고 부들 신 신고 너비가 한 폭 되는 건을 쓰셨네.

그늘 짙게 드리운 고목에선 꾀꼬리 울고

아름다운 동쪽 울타리엔 서리맞은 국화 빛깔도 선명했네.

세상은 끝없이 어지러웠지만 마음 쓰지 않고

살림살이 옹색했어도 뜻을 좇아 만족해하며 사셨네

큰벼슬 할 천품을 지니고도 누추한 집에서 늙으셨고

좁은 집 텅 비어 쓸쓸했으며 겨우 무릎 하나 들일만 했네

집에 술 익으면 밤중에라도 문 두드리고 들어왔고

머리 위엔 본디 술 거르는 녹주건이 얹혀 있었네

늙은 농부 때때로 뽕과 삼이 얼마나 자랐느냐고 물었으며

술병 들고 와 잔을 나누며 친밀히 이야기 나누었네

한 통 술에 바로 취하면 북창 아래 누워

          속세를 떠난 듯 스스로 희황(羲皇)적 사람이라 했네….

―「도연명사진도」, 사유반 ---


도연명처럼 술을 사랑하고 국화꽃을 사랑하던 이가 몇이나 될까.

그가 살던 동진(東晉) 시대, 어지럽고 혼잡한 세상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술을 택했던 것은 아닐까.

그가 바라던 이상향을 찾아 매일 그렇게 술에 잠기는 것일까.


이태백도 도연명의 술 좋아함을 적은 시가 있다.

도연명은 매일 취하여, 다섯 그루 버들에 봄이 온 것도 몰랐네

소금(素琴)에는 본디 줄이 없었고, 술을 거르는 데에 머리에 쓴 건을 썼네.

맑은 바람 들어오는 북창 아래에서 스스로 복희씨 적 사람이라 했네

그 는 한 통 술에 만취되면 북창 아래 누워 스스로 희황 때 사람이라 했다는데,

아주 먼 옛날의 태평 시대, 복희씨 시대로 돌아가기를 그리워하고 있음일 것이다.

그가 그린 이상향 「도화원기」에 나오는 마을을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복숭아꽃이 활짝 피어 있는 평화스럽고 근심 걱정 없고 소박한 마을, 그 마을로 날아가기 위해,

그의 집 주위에 심어놓은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에 봄이 오는 줄도 모르고

매일 술에 만취됨을 즐기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한 폭이나 되는 녹주건을 즐겨 쓰고 다녔는지도 모른다.

도연명이 머리에 항상 녹주건을 쓰고 다니던 이유도,

술이 익으면 어느 자리에서도 머리에 쓴 녹주건을 벗어 술을 거르고서,

한 잔 두 잔 만취됨을 즐겼던 이유도,

시끄러운 속진을 떠나 훨훨 고원한 세계로 날아가기를 희망했음이리라.


술 속에 문학이 있고, 문학 가운데 술이 있는 것일까.

한 잔의 취기가 끌어 올리는 서정의 울림을 옛 시인인들 어찌 마다 하였겠는가.

시선 이백도 술에 만취되어 강속에 비취는 달을 잡으려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불객의 몸이 되었다 하니 미치고 환장할 <술마시기>가 아닌가.

그들은 모두 좋은 글을 얻기 위해 술을 마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인생의 <천고수> <만고수>의 괴로움을 잊기 위해서 술을 마시고ㅡ 취한다고 랬다.

아!~ 그런가?

망우물(忘憂物)인 술을 마시려면 모름지기 낮술을 마셔야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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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성 도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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