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아름다운 구멍

2015.10.19 16:57

목향 Views:2560

 

아름다운 구멍

鄭 木 日

 

 

속이 빈 대나무를 보면 구멍을 내고 싶다.

불에 시뻘겋게 달군 쇠꼬챙이로 대나무에 몇 개의 구멍을 뚫고 싶다. 눈을 감고 나도 대나무가 되고 싶다. 오장육부가 타 들어가고, 뼈가 으스러져도 견뎌내야 한다. 하나의 단소거나 대금이 될 수만 있다면, 인내의 극한까지 참아내야 한다. 마음을 비우고 뼈가 타는 뜨거움을 참아내야만 음률을 맞춰낼 수 있는 목관악기가 될 수 있으리라.

입에 대고 불면 어떤 상념이나 느낌도 맑게 은은히 영원 속으로 흘려보낼 수 있었으면 한다. 손가락 끝으로 닫았다 여는 구멍 몇 개로 달과 별에게도 닿고, 어떤 근심이라도 지우고 싶다. 욕망도 부드럽게 쓰다듬어 잠재우고 싶다. 하나의 목관악기가 되고 싶다.

티끌 하나 묻지 않은 연적이 되었으면 한다. 이른 새벽에 떠온 샘물로 채워두고 싶다. 오랜 명상으로 넉넉해져 담담해지고 싶다. 연적은 마음을 담아 놓은 그릇이다.

연적엔 구멍이 있다. 조그만 숨구멍으로 때를 기다리는 그릇이다. 연적의 물이 벼루 위에서 먹물이 될 때, 시가 되고 문장이 된다. 사군자(四君子), 화조(花鳥), 산수도(山水圖)가 된다. 물 채워둔 연적, 고요의 한 가운데 생각을 담아둔 마음의 그릇이고 싶다.

연꽃을 피우는 연근(蓮根)엔 구멍이 송송 나 있다. 진흙 속에 뿌리를 박고 연꽃을 피우려면 숨이 막히지 않게 구멍이 있어야 한다. 맛을 보면 사근사근 씹히는 것이 은근하고 담담하다. 진흙구덩이 속에서 묻혔을망정 깨달음의 꽃을 피워내는 연뿌리의 구멍을 본다. 이 구멍들이 있었기에 연꽃의 눈부심과 향기가 퍼질 수 있었으리라.

 

광장에 뿜어 오르는 분수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마음을 청신하게 적셔준다. 햇살 눈부신 날에는 무지개를 만들어 낸다. 나도 한 줄기 물이 되어 푸른 하늘로 치솟아 무지개가 되고 싶다. 물을 뿜어 올리기 위해선 숨어있는 작은 구멍들이 있어야 한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구멍들이 있어서 숨을 쉬고, 세상과도 소통한다. 나에게도 세상의 아름다움과 닿는 눈, , 코가 있었으면 한다. 욕심을 버려 마음을 비워내고, 삶의 고난과 고통을 참아내야 스스로 아름다운 구멍을 낼 수 있으리라.

No. Subject Author Date Views
315 바람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고 [3] file 귀담 2013.09.16 5801
314 우주, 그 끝은 어디인가.[2] [2] 귀담 2013.08.18 5785
313 호랑이 담배 피우던 옛이야기 [1] 목향 2014.05.29 5779
312 詩 : 맨하탄에는 고래가 산다. [1] file 귀담 2013.09.27 5774
311 나무 송 : 나무야 나무야 푸른 나무야 [1] file 귀담 2013.05.27 5774
310 도연명의 독산해경 / 석현 임재우선생 작품 [1] 귀담 2014.05.11 5769
309 외국인 바둑대회 [1] 귀담 2013.12.29 5760
308 숭례문 현판 글씨 [2] file 귀담 2013.05.03 5748
307 란초 / 서정주 시 [1] file 귀담 2013.05.10 5729
306 가람선생의 詩魔를 쓰다 [7] file 귀담 2015.03.21 5719
305 방필 원필 [1] file 정일헌 2015.05.11 5704
304 陶淵明의 <桃花源記> 와 <桃花源 詩 > [4] file 귀담 2013.05.26 5701
303 노년의 삶 [6] file 귀담 2013.05.18 5696
302 아침에 [5] file 귀담 2015.07.30 5606
301 수양버들 [6] 목향 2014.02.24 5604
300 萬海 한용운 옥중 시 [1] 귀담 2014.05.11 5603
299 귀담 한시첩 [1] [3] file 귀담 2014.11.24 5584
298 거북이의 노래 / 귀담 [4] file 귀담 2013.05.26 5567
297 내가 쓴 입춘서 [2] file 귀담 2013.04.30 5567
296 초록마음 [草綠心] [1] file 귀담 2013.05.17 5545
295 새해 아침 우주관광 [5] file 귀담 2015.01.01 5534
294 孤陋愚蒙 고루우몽 <작품3 > [2] file 귀담 2013.04.26 5515
293 문둥북춤 [6] file 목향 2013.07.04 5512
292 율객(律客) - <작품5 > [2] file 귀담 2013.04.28 5505
291 욕쟁이 새 / 귀담 [2] file 귀담 2013.04.28 5449
290 작품 6 [1] file 귀담 2013.05.11 5445
289 졸시 한 편 쓰다. [3] file 귀담 2015.04.18 5444
288 漢四郡의 실제위치 [3] 귀담 2013.11.23 5431
287 역사공부 : 계유정란 [4] 귀담 2014.03.04 5365
286 백자(白瓷)의 태깔 / 鄭 木 日(33) [1] 귀담 2013.10.20 5363
d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