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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2015.05.22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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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정 목 일

 

오월은 부케를 손에 들고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처럼 청신하고 눈부시다. 웨딩마치를 들으며 아버지의 손을 잡고 결혼식장으로 들어가는 신부의 우아한 모습을 연상시킨다. 일생 중 가장 눈부시고 향기로운 모습으로 축하객의 박수를 받으며 등장하는 신부! 축복은 그대의 것이 되리라.

 

오월은 신록과 장미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산과 들판으로 나가 보면 찔레꽃의 계절임을 알게 된다. 물가로 나가보면 창포꽃의 계절인 양 생각된다. 오월은 집안의 장미를 감상하는 것으로 그칠 순 없다. 산야엔 어느새 제비꽃, 개망초꽃 등 플꽃들이 피어있다. 어떤 풀이든 일생에 한 번 피운 꽃들은 삶의 집중력을 기울여 내놓은 미()의 얼굴들이다. 풀꽃들은 장미, 국화, 튤립 등 눈에 띄는 원색과 아릿따운 자태를 가지진 않았을지라도 수수하고 정갈한 멋, 고요하고 소박한 빛깔과 순정한 자태가 있다. 단색의 단아한 모양새로 있을 듯 말 듯한 향내를 풍기지만, 시골 처녀 같은 천진하고 아리잠직한 모습을 지녔다.

 

오월의 들판과 산은 신록으로 덮여있다. 초록동색(草綠同色)인 듯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천만 가지의 초록으로 넘실거리고 있다. 형형색색의 녹색이 생기를 뿜아낸다. 번데기를 벗고 막 기어나온 듯이 햇빛 속에 꿈틀거리는 듯한 붉은 기운이 섞인 연두빛깔이 있는가 하면, 어떤 것은 파릇파릇, 푸르므레, 푸르초롬, 푸르스레, 푸르죽죽, 프르딩딩하게 제각각 초록의 경연을 펼친다. 산색과 들판은 온통 초록의 나라이며 꽃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초록잎새들로 가득 차있다.

 

숲의 새소리도 신록에 맞는 음색(音色)으로 화답을 하고 있다. 바람도 그냥 지나치는 게 아니라, 꽃가루를 묻혀 가루받이를 잘 할 수 있게 산들거리며 신바람을 내며 간다. 냇물이나 계곡의 물소리도 만물에게 무엇인가 속삭이며 흐른다. 어떤 염세주의라 할지라도 오월의 숲에 오면, 마음의 어둠이 금세 사라지고 말 것이다.

 

숲 속에 와서 신록과 들꽃을 보면서 마음을 씻어내노라면 바람결에 풍겨오는 강렬하고도 짜릿한 꽃향기에 끌리게 된다. 어디서 오는 향내일까. 코를 벌름거리며 향내를 보내준 송신자를 찾아가면 거기에 하얀 찔레꽃을 만나게 된다. 숲이나 들판에서 이토록 가슴 속까지 맑게 틔워주는 향기는 없다. 아카시아 향기는 조금 감미로운 듯한 향기이지만 찔레꽃은 마치 혼을 빼앗듯이 진하며 깊이가 있고 황홀하다.

 

꽃향기로는 라일락과 천리향과 난향이 일품으로 칠 것이지만, 내가 생각하기로는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은 찔레꽃향이 아닌가 한다.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하고 매혹적인 향기로 말미암아 향기의 여왕이 되고 들판의 주인공이 된다.

 

찔레꽃을 들장미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산야 어느 곳에서나 피어나는 야생의 꽃이다. 장미는 정원과 온실에서 순탄하게 피어나는 꽃이라면, 찔레꽃은 비바람과 뙤약볕을 받으며 어느 곳이든지 가리지 않고 피어난다. 척박한 땅과 자갈밭을 구분하지 않고 땅바닥에 몸을 밀착시키면서 흙내음과 바람 속에서 순백의 꽃을 피워놓는다. 녹색 천지의 산야가 심심하지 않게 녹색에 지치지 않도록 우리의 눈을 환하게 밝혀주고 향기롭게 해주는 꽃이 찔레꽃이다.

 

꽃을 보면 꺾고 싶어진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맑은 향기를 보내준 것에 감사하면서 한 줄기를 꺾어 코에 대보고 싶다.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코에 대어 향기를 맡아보게 하고 싶은 꽃이다. 그러나 찔레꽃은 자신의 모습을 보여줄 뿐 꺽는 것을 순순히 용납하지 않는다. 자신도 모르게 손이 가다가도 멈짓하고 마는 것은 줄기에 날카로운 가시를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무심결에 손을 내밀었다가 낭패을 보고 잠시 원망하는 마음도 가지게 만든다. 찔레꽃은 손 대지 말고 보기만 해요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무엇이든 원하는 것은 손에 쥐고 싶어하는, 인간의 이기와 욕망에 경종을 울려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폭풍우에도 끄떡하지 않고 청신한 자태와 매혹스런 향기를 잃지 않는 찔레꽃은 야생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꽃이며 순결과 결백의 기품을 간직한 꽃이다.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면서도 투박하거나 밋밋하지 않고 우아하면서도 화사하고 마음까지 향기롭게 하는 꽃은 찔레꽃 말고는 찾기가 어렵다. 들판의 바람과 햇빛과 별들의 말을 간직하면서 핀 찔레꽃! 호박꽃 박꽃이 피기 전에 농부들의 마음을 향기로 채워주는 친근한 농부들의 꽃이다. 아침 일찍 풀 이슬을 밟으며 논밭으로 나가는 농부에게 향긋한 향기로 인사를 하고 피로와 근심을 씻어주는 고마운 꽃이 아닌가.

 

도시에서 나서 자란 사람들은 찔레꽃의 마음을 알지 못할 것이다. 찔레꽃엔 가난의 슬픈 내력과 아픔이 있다. 농촌에서 자라 춘궁기를 겪었던 사람들이 지닌 추억이다. 양식이 떨어지고 배가 고프면 아이들은 송구를 따먹기도 했고, 찔레순을 벗겨 먹으며 허기를 달래고 했다. 그 때의 찔레꽃 향기는 아릿하고 비린내를 풍기는 듯했다.

 

찔레꽃은 녹색으로 덮힌 땅을 우아한 흰 꽃으로 치장해 줄 뿐 아니라, 쉼호홉을 하게 짜릿한 향기를 풍겨준다. 가시를 품고 있으나 배고픈 아이들에게 잠시 허기를 면하게 해준 고마운 꽃이다.

나는 찔레꽃을 향기의 여왕, 오월의 꽃으로 예찬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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