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4.18 04:00
죽음의 미학
정목일
J씨가 글월과 함께 차를 보내왔다. 화계사 차 할머니가 손수 만드셨다는 귀한 차를 한 통 보내 준 것이다. 부랴부랴 다기를 구해다가 차를 끓여 그 맛을 보면서 J씨를 생각했다. 차의 맛을 모르는 나로서는 그냥 담담한 맛 이외엔 차의 맛을 알 수 없지만 차츰 터득해 보리라 생각한다.
J씨의 글월 중 가장 감명을 받은 것은 장시, <논개>를 쓰기 위해 논개의 행적지를 몇 달째 답사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모두 1천2백 매를 예정하고 있으며 800매가량 집필하였다고 하니, 그 집념과 진지한 노력에 그저 놀랄 뿐이다.
언젠가 진주에서 강희근 시인과 J씨의 이야기를 하던 중에 <논개>에 대한 자료수집과 집필에 도움을 얻고자 벌써 한 달이나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논개의 행적을 좇아 경남 함양군과 전북 장수군의 경계를 이루는 육십령을 차례로 넘나들면서 산기슭에서 노숙도 하고 오직 논개만을 그리기를 수십 일째, 덕유산 기슭에 있는 논개의 묘를 찾아 절을 하고 나니, 그때서야 참을 수 없는 통곡이 북받쳐 오르더라는 J씨의 얘기도 전해 들었다.
논개의 묘가 있는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덕유산 기슭의 ‘조산’이라는 마을에서 2년가량 지낸 일이 있는 데다, 진주에서 태어나 남강을 바라보며 자란 나는 누구보다 논개에 대한 이미지를 선명하게 간직하고 있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때문일까. J씨의 글월에는 논개의 죽음에 대한 나의 견해를 듣기 위해 한 번 찾아오겠다는 얘기도 있었다.
나는 남강을 바라보며 가끔 이 강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생각해 보곤 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 해인 계사년 제2차 진주성 싸움에서는 7만 명의 시민이 전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하나의 성을 지키고 빼앗는 공방전에서 7만의 인명 손실을 내었다는 것은 세계고금의 전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하나의 성에서 7만의 전사자를 냈다는 것만으로 임진왜란 중 진주성 싸움이 얼마나 처절한 전투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군사가 아닌 대부분의 양민이 성의 함락과 운명을 같이했다니, 그때의 상황이 어떠했을까.
민족의 의지와 기백과 민족혼을 강조하는 것은 우리의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발로이니만큼, 진주성은 영원히 기억해야 할 역사의 성지로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차차 나이가 들면서 이따금 이 넓지 않은 성안에서 7만이라는 인명이 죽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알 수 없는 회의와 의문이 들었다. 7만이라는 숙자 개념과 죽음이라는 의미가 결부되어 그렇게 많은 인명이 한꺼번에 희생되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고개를 든 것이다.
진주성의 전투를 무조건 긍정적으로만 받아들여도 되는 것일까. 7만의 인명손실을 낸 참패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이 중에 군사는 수천에 불과할 뿐, 나머지는 모두 전투 능력이 없는 백성들이었다고 하니, 그때의 상황에서 가장 지혜로운 방법과 전략이 동원되었던 것일까. 전투 능력이 없는 백성들을 대피시켜 희생을 막을 수는 없었을까.
나라와 민족을 위한 전투에서는 쌍방 희생자가 나게 마련이지만, 불필요한 백성들의 희생까지 나라와 민족을 위한다는 대의명분 속에 포함시켜 버리는 일은 큰 시행착오가 아닐 수 없다.
생명이란 존귀하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도 소중하다. 나는 진주성에서 피의 의미와 생명과 죽음의 의미를 생각해 볼 때가 많다. 진주성 7만의 죽음 가운데 가장 아름다이 꽃핀 죽음은 논개의 죽음이 아닐까.
논개의 죽음은 하나의 시였다.
논개는 전북 장수 출신으로 최경회 장군을 사모하던 여인이었다. 최경회를 따라 진주성에 왔다가 최경회 장군이 전사하자 삶을 포기한 그녀였지만, 성이 함락되고 성안의 모든 사람들이 살육을 당하게 되자 죽음의 의미를 되새긴다.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죽을 것인가.’
이것이 당시 논개의 당면 문제였다. 논개는 결국 왜장 게야무라 후미스케를 남강 속의 바위로 유인하여 강물 속으로 뛰어든다.
논개의 죽음은 시적인 죽음일 뿐 아니라, 드라마틱하다. 승전의 기쁨과 패전의 비극이 교차되는 역사의 현장에서 한 사람의 나약한 조선 여인이 승전군의 장수를 껴안고 강물에 빠져 죽는 장면은 매우 극적이다. 뿐만 아니라 논개는 진주성 7만 명의 죽음까지 미화시켜 놓았다. 그녀의 죽음은 진주성 전투의 참패로 쓰라린 상처를 입었던 민족의 가슴을 치유해 준 한 편의 감동적인 시였다.
논개는 왜장을 죽음의 파트너로 삼았다. 그녀는 자신이 사모했던 최경회 장군을 전사하게 만든 왜군에게 끓어오르는 적개심과 분노를 지닌다. 왜장을 안고 강물에 뛰어든 그녀의 극적인 죽음은 진주성의 패전을 정신적으로 보상해 주는 역할을 했다.
논개가 군졸을 안고 강물에 뛰어들었다면 얘깃거리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택한 죽음의 파트너가 왜장이었기에 반 푼이나마 맺힌 한을 풀리게 만든 것이다.
강물에 뛰어든 사람이 어찌 논개뿐이겠는가. 김해부사 이종인은 싸우다 칼이 부러지자 양팔에 왜군 한 명씩을 껴안고는 “김해부사 이종인이 여기서 죽는다”라고 외치며 강물로 투신했다. 끝까지 싸우다 전사한 대장부다운 죽음이었다.
“대장부의 죽음을 어찌 더럽힐 수 있으랴”라며, 촉석루에서 술 한 잔 나눠 마시고 절벽 밑 강물에 미련없이 몸을 던진 삼장사의 죽음은 또 얼마나 극적인가.
그러나 그 어떤 것도 논개의 죽음보다 강렬한 감동을 일으키지는 못한다. 죽음 자체는 같은 것이지만 죽음의 의미는 상황과 결과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논개의 죽음은 애국적인 면에서만이 아닌 미학적인 드라마로 장식되어 있다.
논개는 죽음을 통해 영원한 생명의 부활을 보여 준다. 그녀는 죽음 자체를 하나의 창조로 바꾸어 스스로 드라마를 연출했다. 논개의 죽음이 우리 민족의 가슴속에 오래도록 한 송이 꽃으로 피어 있는 것은 그 죽음이 극적인 드라마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패전의 피비린내 나는 참혹한 비극과 승전의 도취, 나이 어린 어여쁜 여인과 왜군의 장수. 이처럼 극적인 대조감을 보여주는 것이 또 있을까. 그녀가 적장을 얼싸안고 강물에 몸을 던지는 장면은 원수를 갚겠다는 적개심을 초월하여 미학적인 이미지를 던져 준다.
논개가 왜장을 죽이고 자신도 죽은 것이 아니라 왜장과 함께 더불어 죽었기 때문에 그 죽음에 대한 이미지는 더욱 강렬해진다. 논개는 죽음까지 얼싸안았던 것이다. 더구나 죽음의 장소로 택한 곳이 강물 속의 바위라는 점은 논개의 죽음을 더욱 아름답게 승화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논개가 죽음의 장소로 택한 강물 속의 바위. 지금은 의암이라 불리고 있지만 이곳이 죽음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하는 특징 있는 장소인 것만은 분명하다.
강은 영원히 흐를 것이다. 그 영원의 물길 속에 논개는 몸을 던졌다. 만일 논개가 강물이 아닌 곳에서 왜장과 함께 죽었다면, 논개의 죽음은 좀 덜 감동적이었을지 모른다.
강은 끊임없이 흐르는 존재로 영속감과 동적인 이미지를 갖는다. 논개는 이 강이라는 이미지 속에 죽음이라는 이미지를 결부하여 선명한 의미의 생명률生命律을 만들어 놓고 있다. 그래서일까. 강을 보면 논개의 미학을 확인하게 된다.
논개의 죽음은 춤이었다.
그녀는 이미 죽기로 결심했으나 왜장을 유인하기 위해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춘다. 때문에 논개의 죽음은 비극적인 상황을 초월하여 최후의 순간까지도 낭만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해 준다.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노래와 춤으로 왜장을 죽이는 방법이야말로 미학이 아니고 무엇이랴. 왜장을 얼싸안고 함께 강물에 뛰어든 것은 분노와 복수심을 초월한 포용력을 의미하기까지 한다.
나는 진주성 안을 거닐면서 죽음의 최대 미학을 창조해 낸 논개를 그려본다. 어떻게 그런 죽음이 마련될 수 있었을까. 시공간의 타이밍을 절묘하게 맞추어 죽음의 미학을 연출해 낸 논개야말로 참으로 축복받은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생애의 업적과 공로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만, 논개는 죽음 자체만으로 영원히 겨레의 마음속에 남아 있다. 논개의 죽음은 그 자체만으로 역사적인 상징성, 애국적인 의미성과 미학을 획득하고 있다.
J씨의 장편 서사시 <논개>는 아직 원고를 보지 못해 알 수 없는 일이나 논개의 죽음과 그 미학이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는 자못 궁금하다. 논개를 민족의 대서사시로 형상화시키려는 J씨의 야심과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스무 살도 못다 살고 간 여인의 죽음을 형상화하고 그녀의 삶 전체를 조명해 본다는 것은 뜻 있는 작업이다. 그녀의 성장 환경과 사랑, 전개의 과정과 역사적 배경 속에 과연 논개가 어떤 모습으로 투영될 것인지, J씨의 시집이 어서 출판됐으면 싶다.
아아, 삶도 소중한 것이지만 죽음은 또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삶의 마지막 끝마무리인 죽음은 하나의 미학인 동시에 창조가 아닌가 한다.
- 정목일 수필집 <모래밭에 쓴 수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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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역사적 사실 기술이 맞는지.
오늘날 지방자치단체간의 역사인물 챙기기로 서로 논란이 되기도 한다.
논개는 최경희장군의 처인가? 애인이였는가?
죽은 후에 같은 묘지에 그것도 최장군 앞에 묘가 있다.
또 다른 역사적 기술에는 논개가 죽은 후 그녀의 시신이 최경희 가문으로 오는 것을
반대했다는 역사 기술도 보인다. 이유는 최경희 가문에서 외놈과 놀다가 죽었다는
불순한 생각이 있었던것 같다. 그래서 시신의 안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전한다.
또 다른 설은 외놈들의 시신 훼손이 두려워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중간에 임시 분장했다는 설도 있다.
정확한 사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