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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의 가락지

2015.03.23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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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개의 가락지

                              鄭 木 日

 

   진주 남강은 논개(論介)의 가락지 사이로 흐른다.

   희고 부드러운 여인의 손가락에 끼인 가락지는 사랑의 정표로서 변함없는 마음의 꽃이다. 가락지는 여인에게 있어서 사랑의 상징이며 인연의 고리이기도 하다. 남강에 가보면 천년만년을 흘러온 푸른 강물이 가락지 사이로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락지를 보면, 사랑의 기쁨과 축복의 노래가 들려올 듯하건만, 남강에서 보는 가락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애통하고 눈물겹다. 님의 품에 안겨 행복감에 만져보는 가락지가 아니라, 원수를 품에 안고 복수심에 떨며 바라보던 가락지이다. 사랑을 약속한 꿈의 가락지가 아니라, 죽음을 각오한 비애의 가락지이다.

   때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 해인 계사년(1593년) 6월 29일, 이날은 왜적의 공략에 맞선 결사 항전도 무위로 끝나고 진주성이 함락된 운명의 날이었다. 성을 지키며 끝까지 싸우던 7만여 민. 관. 군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잃었다. 한 성의 공방전으론 세계 전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전사자가 생겨났다. 푸른 남강은 순식간에 붉은 피로 물들었다. 시민들은 진주성과 운명을 함께했고, 남강은 소리치며 피눈물로 흘렀다.

   진주성 함락과 7만여 명의 전사는 우리 민족에게 좌절과 통탄과 절망을 안겨 주었다. 마지막 보루였던 진주성이 무너지고, 7만여 민. 관. 군이 참혹하게 목숨을 잃은 일은 역사의 비극일 뿐 아니라, 민족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통한의 피멍이 들게 했다.

   성(城)이 함락되던 그 날 밤, 왜군들은 촉석루에서 승전 축하연을 열고 기쁨에 취해 있었다. 흰 소복 차림의 한 여인이 촉석루로 다가가고 있었다. 아직도 앳띤 여인의 이름은 논개였다.

   성이 함락되자, 논개로선 죽음의 길밖엔 없었다. 논개는 끓어오르는 슬픔을 누르고 목청을 가다듬어 전해 오던 시를 외었다.

 

   "흥하고 망하는 일 지금인들 뉘 알랴만,

   층층한 산마루엔 촉석루만 높았구나.

   청산은 들 밖에서 기어들다 끊어지고

   강물은 정자 앞에 활짝 펼쳐 깊었구나."

 

   낭랑한 소리를 들은 왜장이 부하를 시켜 논개를 데리고 오게 했다. 적장은 논개의 아름다운 용모에 놀랐다.

   "오늘 나와 함께 즐겨 보자."

   적장과 논개는 촉석루 위에 술상을 차려 놓고 술을 권하며 노래 불렀다. 논개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적장을 촉석루 밑, 강물 속에 있는 의암(義岩)으로 유인했다. 적장에겐 술을 권하고 논개는 춤추었다. 왜장도 넋을 잃고 함께 춤추었다. 왜장은 전리품인 가락지를 논개의 손가락마다 하나씩 끼워주었다. 왜장으로선 일생 중 가장 기쁘고 흥겨운 밤이었다. 강물 속 하얀 바위 위에 아리따운 조선의 여인과 춤추며 승전을 축하하는 밤이 아닌가. 논개의 부드러운 팔이 왜장을 살짝 껴안는가 싶더니, 양팔이 꽉 죄어들었다. 열 손가락에 깍지 낀 손이 옥죄어졌다. 이어, "풍덩—"하는 소리가 나고 강물 속으로 떨어진 논개와 왜장의 모습은 영영 보이지 않았다. 꽃다운 나이의 논개는 죽음과 입맞춤하고 강물에 몸을 던졌다. 논개는 원수를 품에 안고 님에게로 갔다. 삶보다 거룩한 죽음을 택해, 겨레의 품속에 안겼다. 논개의 가락지는 이 세상에서 가장 눈물겨운 비탄의 가락지이건만, 남강을 민족혼의 동맥으로 겨레의 가슴속으로 흐르게 만들었다.

   논개의 순국은 진주성 함락과 7만여 전사자로 말미암아, 비통 절망 실의에 빠져 있던 우리 겨레의 마음을 위무하고 민족혼을 소생시켜 주었다. 원통해서 잠들 수 없는 전사자들의 넋을 위로해주고 억울함을 반쯤이나 보상시켜 주었다. 피로 물든 강물 위에 사라지지 않는 꽃향기를 띄워놓았다.

   남강은 문화를 낳은 어머니로서의 상징성뿐만이 아닌, 민족의 강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논개의 순국은 죽음의 의미를 극대화시킨 꽃이다. 산자수명한 절경지 촉석루와 강물 속의 하얀 의암—. 흐르는 강물과 움직이지 않는 바위, 승전군의 대장과 패전군 장수의 아내였던 아름다운 논개, 이 얼마나 대비적인가. 논개는 기꺼이 죽음을 얼싸 안았고, 꽃처럼 강물 속으로 떨어졌다.

   논개의 열 손가락에 낀 가락지는 남강과 함께 영원히 남아 있다. 후손들이 다리를 놓으면서 가락지를 형상화시켰고, 강변의 문화예술회관 건물에도 가락지를 달아놓았다.

   논개의 가락지가 푸른 강물을 어루만지고 있다. 겨레의 마음에 영원의 가락지를 끼워주고 있다. 그 강물 위로 개천예술제의 유등이 꽃인 양 향기롭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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