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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도립병원과 고향집

2015.03.14 17:47

목향 Views:4160

진주도립병원과 고향집

정 목 일

 

고향을 떠난 지 올해로 30년 째 되었다. 떠나갈 적에 돌아오리라는 마음에서 집을 팔지 않고 갔다. 고향에 아직도 집이 있음으로써 나를 비롯한 형제들의 마음에 어릴 적의 추억과 그리움이 남아있길 바랬다.

진주의 집은 스무 평에 불과한 작은 집이다. 집 앞의 도립진주병원진주중앙병원으로 개축 개원하게 되었다. 세월의 흐름을 실감한다.

내 성장기의 추억과 서정의 텃밭이라고 할 수 있는 진주도립병원! 그곳은 나에겐 아름다운 성소였다. 어릴 적의 꿈과 신비가 가득 찬 놀이터이자, 나를 길러준 정겨운 품속이었다. 사람마다 잊을 수 없는 어릴 적의 성소가 있게 마련인데, 도립병원은 나의 첫 기억이 아로새겨진 곳이다.

어릴 적의 진주도립병원은 붉은 벽돌 건물로 본관 건물과 그 뒤 병실 건물, 영안실이 있었다. 병원 안엔 진주간호학교가 있어서 하얀 모자를 쓴 간호학생들이 삼삼오오 드나드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본관 건물 앞엔 45도쯤의 비탈진 언덕이 있고 아래엔 은행나무, 포고나무들이 심어져 있었다. 진주 중심부를 차지한 진주도립병원은 오래 된 나무들이 많아 녹지대()를 이루어 하나의 성곽 같은 느낌을 갖게 했다.

진주도립병원은 주변에 살던 아이들에게는 더 없는 놀이터였다. 본관 앞에 경사진 비탈의 풀밭에서 누가 먼저 굴러 내려가느냐 하는 놀이를 벌이는가 하면, 사철나무의 별 같은 열매를 따서 탄환처럼 피웅-피웅-’ 소리를 내면서 던지고 놀았다.

도립병원엔 아이들의 넋을 빼기에 좋을 밤나무, 능금나무, 표교나무, 모과나무, 추자나무 들이 있었다. 아이들은 수위의 눈을 피해서 담벽을 다람쥐처럼 타고 드나들었다. 망보는 아이, 나무 위에 오르는 아이, 과실을 주워 모으는 아이 등으로 임무를 나눠, 숨 막히는 작전을 벌여 개선장군이 되기도, 패잔병처럼 쫒겨 달아나기도 하였다.

진주도립병원은 오래 된 꽃나무들이 많았고 희귀목()들이 있었다. 나의 첫 기억은 도립병원의 목련나무로부터 시작된다. 네 살쯤이었다고 생각된다. 외할머니의 등에 업혀서 집 앞의 도립병원에 놀러갔다. 화사한 3월의 봄날, 나는 할머니 등에 업혀서 아름드리 큰 목련나무 밑에서 수천 송이도 넘는 목련꽃들을 올려다보았다. 향기롭고도 아름다운 꽃 하늘을 숨 막히게 바라보았다. 송이송이 하얀 목련꽃들이 동동 구름처럼 화사하게 떠올라 있었다. 바로 손끝에 잡힐 듯한 거리였다.

할매, 꽃 하나 따줘!”

할머니를 졸라댔다.

꽃을 꺾으면 의사 선상님이 야단치시텐데....”

- 꺽어줘-”

나는 손끝에 닿일 듯한 향기롭고 눈부신 꽃을 갖질 못해 안달이 났다. 할머니는 외손자의 재촉에 어쩔 수 없어 막 손을 뻗혀 목련꽃 한 송이를 몰래 꺾던 순간이었다. 어느새 이 광경을 본 것일까,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불쑥 나타났다.

꽃을 꺾으면 안 돼요.”

외할머니는 그만 무안하다 못해, 내 엉덩이를 철썩 한 대 때리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보거라, 석아-. 안 된다고 했지. 에그, 이 할미가 그만 꽃나무에 목을 매고 말까?”

외할머니의 뜻밖의 당황함과 무서운 말에 놀라서, 나는 으앙-’ 큰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의사는 언제 자리를 떠났는지 행방을 감추고 말았다. 나는 언제나 귀엽게만 위해주시던 외할머니에게서 엉덩이를 맞은 것이 서러워서 징징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한 손엔 목련꽃 한 송이가 들려져 있었다.

이렇듯 내 첫 기억이 새겨진 성소인 도립병원엔 어느새 그 목련나무도, 신바람과 짭조롬한

흥분과 맛을 안겨주었던 과실나무도 하나도 없이 베어져 사라지고 말았다. 크고 오래 된 나무들을 없애고 병동을 지어 숲을 이루던 정원이 간 데 온 데 없어졌다.

녹색 공간이 사라짐에 따라, 정서 공간을 찾을 수 없다. 병원이란 휴식과 사색 공간이 있어야 하고, 정서 공간이 필요하다.

아름답던 도립병원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어릴 적 추억과 정서를 느끼던 곳이었건만, 지금은 갑갑하고 삭막하게만 느껴진다. 오랜 세월이면, 어떤 것이라도 퇴색과 망각의 과정을 거쳐 사라지고 소멸되지만, 어릴 적의 아름답던 성소가 사라져버린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고향에 살던 집을 남겨 놓고 떠난 것은 언젠가 돌아오고 싶은 그리움이 있기 때문이다. 고향집은 내 마음속에 꺼질 수 없는 그리움의 등불이다. 나에게 고향집이 있어서 어머니의 품속처럼 위로와 그리움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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