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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窟)

2015.01.24 03:32

목향 Views:3956

정 목 일

굴은 어두침침하다. 햇살이 닿지 않고 은폐돼 있다. 단절과 폐쇄공간으로 존재한다. 자신을 숨기고 있어 정체를 알 수 없다.

굴은 소외와 밀폐된 공간만이 아니다. 인류의 첫 거처지이기도 하다. 원시인들에게 비바람을 막아주고 동물들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받던 천혜의 거주 공간이었다. 굴은 은신처가 되기도 했으며, 수도처와 예배처가 되기도 했다. 보물들을 숨겨놓은 비밀 장소가 되기도 했다.

굴을 판다는 것은 깊이, 몰두에 대한 동경과 집념의 행위가 아닐까. 자신만의 자각 공간, 사색과 대화 공간이 필요했던 것이며, 영원 세계에 대한 갈망이 아니었을까.

20061011일의 실크로드 기행은 나에게 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어둡고 음침한 굴은 나에게 깨달음의 공간으로 다가왔다. 나는 황하를 내려다보고 있는 병령사석굴(炳靈寺石窟)과 사막 속에 펼쳐진 돈황(敦惶)의 막고굴(莫高窟)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길을 보았다. 폐쇄와 밀폐공간으로서의 굴이 아닌 깨달음의 길로써의 신성공간인 굴을 보았다.

세계 최대 불교미술의 유적지이자 보고(寶庫)로써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적으로 지정된 막고굴은 오랜 풍우에 빛이 바래고 마멸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굴속에 불상을 안치하고 흙담 위에 벽화를 그린 서기 366년부터 14세기까지 1천여 년 동안 남겨진 1천 여 개의 작품들 중, 현존하는 것은 4백여 개에 불과했다.

왜 굴을 파서 불상을 안치하는 형식을 택하였을까? 사막에서 불상을 제작하여 풍화작용에 훼손당하지 않고 강렬한 태양광선으로부터 색상을 원형대로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석굴이었다.

막고굴은 단순한 전시장이 아니었다. 신앙과 예술을 위해 영혼과 의지를 불태운 숭고한 현장이었다. 몇 년에 걸쳐 하나씩의 굴을 판 다음 어떤 불상을 안치할 것인가, 또 어떤 내용의 벽화를 그릴 것인가를 구상하였다. 이 일은 일생의 구상이자 작업이기도 했다. 부처상을 안치하고 벽화를 그리는 일에 일생을 걸었다.

깨달음의 경지를 터득한 부처의 상을 인간이 과연 어떻게 조형해 낼 것인가. 그 일에 매달린다는 것은 곧 인간의 한계를 무너뜨리는 일이기도 했다. 부처상을 만들기 위해선 그 자신이 깨달음을 통해 부처가 되지 않고선 불가능한 일이다.

굴을 파면서부터 작가는 고뇌에 빠졌을 것이다. 마음속에 무상무념의 깨달음과 부처의 미소가 떠오를 때까지 면벽수도(面壁修道)를 해야 했다. 막고굴의 미술 제작자들은 명작을 남기고 싶은 개인적인 열망을 초월하여 깨달음에 이르고자 한 순정한 신앙심에 불타고 있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자 했다. 마음을 비워서 하나의 굴이 되고자 했다.

그들이 추구하는 이상세계는 부처의 세상이고, 깨달음의 세계였다. 석굴 속에 들어가 신성 공간, 이상세계를 구현하려면 작가의 구원 의식과 깨달음, 창조적인 미의식과 상상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그 기간이 적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이 걸렸다. 그들은 붓을 멈추고 작품을 완성하는 순간에, 오래 동안 방황했던 길에서의 질문에 스스로 해답을 얻어 깨달음을 체득하고자 했다.

굴 안에서 작업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았다. 안으로 햇빛이 비쳐들지 않아 청동거울로 빛을 반사시켜 끌여 들여야 했다. 어둠 속에서 굴 안으로 조그맣게 반사된 빛을 따라 가면서 벽화를 그려갔다. 어둠의 공간 속에서 청동거울로 반사시킨 빛을 따라 섬세하게 그려가는 극사실화 작업은 신앙의 힘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부분적으로 그려서 전체적인 구도에 맞게 해야 하므로 작업을 빨리 진행시키기 어려웠다.

, 빛에 의해 그려지는 과정은 작가의 것 이전에 하늘의 계시를 받아 이뤄지는 일이었다. 어둠 속에서 광명을 찾아 그 속에서 마음을 그려가는 일이 벽화작업이었다. 빛에 따라 하늘의 뜻을 받들어 그려갔다.

막고굴의 작품들은 어둠 속에서 안내자의 손전등으로 비춰주는 부분만을 볼 수 있다. 작가들은 어디로 가고 어둠만 남았는가. 석고굴의 미술작품들은 일일이 그 작가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고 무명(無名)이다. 그들은 이름을 남기려 하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길 위에서 작품으로 한 채의 집을 짓고, 깨달음 속에서 떠나려 했다. 명예가 아닌 완성, 완성이 아닌 깨달음, 형체가 있으나 형체가 없는 성취를 바랐다. 그들은 이 일에 일생을 바쳤다.

막고굴 불교미술작품들은 마음과 깨달음으로 보아야 할 예술품이고, 사막의 실크로드 위에서 피운 구도와 영혼의 꽃이었다.

막고굴 안 어둠 속에서 나는 하나의 굴을 생각했다.

일생을 바칠 굴이다. 내 예배처가 되고 수도장이 될 굴이다.

어둠 속에서 빛을 끌어올 청동거울을 마련하고 싶다.

나도 굴 속 어둠에 묻혀서 내 일생을 깨달음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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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가 목향 정목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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