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11 17:18
백령도 해변에서
鄭 木 日
백령도 여행은 홀가분함과 즐거움만일 수 없는 두려움과 떨림을 느끼게 한다. 눈앞에 북방한계선(NLL)를 지척에 두고 있다. 건너편에 북한 황해도의 옹진반도가 훤히 보이는 곳이다. 백령도 여행은 풍광이 아름다워 아찔하고, 동족 간의 전쟁 위협이 있을까봐 두려움이 인다.
평생 처음 백령도 해변을 거닐면서 태고의 평화와 휴식을 맛본다. 콩돌해안에서 한 개의 콩돌이 되어본다. 남포리에 있는 콩돌해안은 천연기념물 제392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백령도 남동쪽 남포리 동쪽, 길이 1.5Km 폭 50m 해안에 콩알 모양의 둥근 자갈이 해안을 따라 깔려 있다. 맨발로 걸으며 발에 밟히는 콩돌과 대화를 나눈다. 큰 바위나 돌들이 더없이 부드럽고 반들반들한 콩돌이 되려면, 몇 만 년이나 파도에 깎여 다듬어져야 했을 것인가. 형체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연마하여 작아질 대로 작아져 하나씩의 맑고 부드러운 얼굴이 됐을까. 콩돌 몇 개 주워 손바닥에 놓고 바라본다. 콩돌 속에서 수만 년 전의 햇살이 반짝이고 파도소리가 들려온다. 콩돌들은 해변에 하나씩의 말없음표(……)가 되어 해조음(海潮音)을 자장가로 들으며 천연스레 누웠는가. 콩돌들은 잠자다가도 깨어나 파도에 휩쓸려 오가며 바다의 교향곡을 연주하고 있다.
나도 각(角)과 선(線)을 지우고 바다와 어울려 아름다운 화음(和音)을 내는 반질반질하고 부드럽게 둥글어진 콩돌이 될 수 있을까. 하나씩의 콩들들은 영원의 말, 노래, 깨달음을 간직하고 있다. 수만 년 전의 별빛과 바다의 음성이 담겨있다. 바다와 함께 영원 속에 부른 악보들이 쌓여있는 듯 보인다. 돌의 영혼과 돌무늬에 남아 있는 세월의 비망록을 쳐다본다.
백령도의 사곶 천연비행장은 신비의 해변이다.
일직선으로 펼쳐진 해변의 모래사장은 규암성분으로 단단하여 차가 지나가도 빠지지 않는다. 이 곳이 세계에서 두 군데 뿐인 해변 자연활주로라고 한다. 사곶해변이 가장 좋은 천연비행장으로 알려진 곳이다. 맨발로 걸어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 언젠가 비행기를 타고 사곶 천연활주로로 사뿐히 내려 본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곳이야 말로 세계의 비행사들에겐 꿈속에 그리던 낭만과 감동을 안겨주는 활주로가 아닐 수 없다. 공중에서 백령도의 전경(全景)을 보면서 사랑하는 이들과 해변으로 사뿐히 내려앉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함께 간 공군 조종사 출신의 ㅇ씨는 경비행기를 조종하여 착륙한 경험담을 들려준다. 북한 땅이 지척이어서 저공비행을 감수하느라 신경을 썼다고 한다.
통일이 되면 사곶 천연해변은 비행사와 여행가들에게 잊을 수 없는 체험의 아름다운 공간이 되리라. 해변으로 밀려오는 파도를 보면서 백사장으로 착륙하는 기막힌 체험을 얻을 수 있으리라.
백령면 진촌리 해안 절벽 위에 심청각과 심청의 동상이 서 있다.
조선시대의 소설 <심청전>의 배경지의 한 공간이 ‘인당수’이다. 심청 동상이 세워진 곳에서 보면, 북한의 장산곶이 훤히 보이고 바다 중간쯤에 인당수가 있다. 효녀의 상징인 심청의 동상은 인당수에 뛰어내리는 모습을 조형화 했다. <심청전>의 작가는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그는 북한 장산곶과 백령도를 배로서 왕래해 본 사람이며 ‘인당수’를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하늘이 내신 효녀 심청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는 효심으로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서 인당수에 몸을 던진다. 죽음을 초월한 효심을 하늘은 버리지 않았다. 심청은 바다에 빠져 큰 연꽃 속으로 들어가 마침내 임금님에게 가게 되고 왕비가 된다. 왕비가 된 심청은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장님을 위한 잔치를 베풀어 아버지를 만나고, 눈을 떠는 기적을 얻는다.
소설의 주제인 효(孝)를 강조하기 위해 연꽃을 통해 구원하는 하늘의 은총을 보면서 독자들은 행복감에 젖었다. 아무리 소설이라 할지라도 연꽃이란 민물에서 피는 꽃인 까닭으로 바다에 등장시킨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민중들은 그런 것을 따지기는커녕 눈물을 글썽거리며 효녀 심청의 생환을 반기며 기뻐하지 않았던가.
효녀 심청동상에 세워진 해안에서 눈앞에 펼쳐진 바다를 본다. 저 멀리 북한 쪽으로 15Km 지점의 인당수를 어림짐작으로 바라본다. 죽음을 초월한 효심의 바다가 가물거리고 있다.
아, 심청이가 연꽃 속에서 살아나 아버지와 해후하듯이 국토통일의 그 날이 어서 와서 서로 떨어져 살던 동포들이 한마음이 되어 얼싸 안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심청을 한 번이라도 두 눈으로 보고 싶어 장님이던 아버지가 눈을 뜬 것처럼 우리 민족도 통일을 이뤄 그동안 막혔던 가슴을 활짝 펴게 해달라는 기구를 심청동상 앞에서 올려본다.
백령도 해변은 태초의 그리움과 고독을 간직하고 있었다.
해안선에 치솟은 바위들은 만년 그리움과 기구를 품고 있었다.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만나 얼싸안고 싶은 해후의 몸짓을 보이고 있었다. 백령도의 절경을 이루는 코끼리 바위, 신선대, 선재바위, 형제바위 등 기암괴석들의 모습은 아름다움 속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국토 통일과 민족화합으로 서로 얼싸 안고 반기고 싶은 간절한 소망과 영원의 표정을 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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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 두 편의 <木日의 수필>을 읽으니 望鄕의 그리움이 솓는다.
겨울 비 차가운데 따듯한 歲寒의 아침이 열리는 듯 하다.
우리는 디즈니랜드의 어린이 동산에서 동심에 젖다
파도소리 귓전을 간지르는 콩돌밭을 木日과 함께 걷기도 한다.
나는 섬 놈이라 콩돌밭이 그립다.
거제 학동 몽돌밭을 아시는가?
어릴 때 그 몽돌밭에 누워 세상이 자지러지는 소릴 들은 적이있다.
바다의 교향곡이 아닌 쉼없는 파도의 격정을 체험한 일이 있다.
해변에 각진 돌 하나 없는 눈부신 몽돌의 전시장!
백령도의 콩돌해변도 그러리라 상상해 본다.
백령도를 가 보고 싶다.
콩돌밭에 누워 그리운 하늘을 보고 싶다.
꽁꽁 언 북녘 땅을 바라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