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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랜드에서의 하루

2014.12.11 17:11

목향 Views:3590

디즈니랜드에서의 하루

鄭 木 日

 

아들, 딸 내외의 초청으로 홍콩에 가게 되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친·외손녀 두 명, 그 아래 두 살 터울의 손녀 두 명씩을 데리고 떠나는 디즈니랜드 여행에 동행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아들과 며느리, 딸과 사위, 친손녀, 외손녀들과 함께 떠나는 여행에 초청받은 것은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다. 평생에 몇 번 있을지도 모를 가족 여행이다. 네 명의 손녀들과 얘기를 나눌 시간을 가질 수 있음이 큰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디즈니랜드는 어린이들을 위한 곳만은 아니다. 칠순의 나이지만 손녀의 손을 잡고 어린이들의 세상으로 들어가 보고 싶다. 세상살이는 신명나는 놀이만은 아니지만, 놀이기구를 타면서 세상살이는 짜릿하고 무섭고 두려움을 동반하고 있음을 배우게 만든다.

 

손녀들이 가게에서 설탕으로 만든 구름과자를 사들고 얼굴에 가득 웃음을 날리며 입으로 떼어먹으며 걸어온다. 손녀들은 달콤한 구름과자를 입으로 가져가며 하늘로 둥둥 떠오르는 달콤함을 느낄까. “할아버지 잡수세요.” 손녀의 웃음 진 얼굴을 보며 어린이가 되어 구름과자를 먹어본다. 입속으로 사르르 녹아든다. 구름이 되고 설탕이 돼보는 순간이다.

 

의자에 앉아 손녀들과 끝말잇기놀이를 해본다. ‘기러기’- ‘기차’- ‘차표’- ‘표정’-‘정목일나는 으하하하-”웃고 만다. ”할아버지가 틀렸어.“ ”그래, 못 당하겠구나.“ 끝말잇기놀이에서 진 것이 여간 고소하고 재미나는 게 아니다. 놀이에 지고도 기쁨을 느낀 것은 처음이다. 어쩌면 인생살이도 끝말잇기놀이 같은 게 아닐까.

 

놀이기구를 타려면 긴 줄 끝에 서서 기다려야 한다. 흥미, 재미, 쾌락을 얻으려면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손녀의 손을 잡고 신명, 감흥을 얻기 위해서 지루함을 참아내야 한다. 달콤함은 손쉽게 오는 게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낙하산 타기>라는 놀이기구를 탄다. 세 명씩 앉아 안전벨트를 매고 대번에 70미터 공중으로 수직상승한다. 절로 오금이 저리고 -’ 외마디 비명의 긴 여음을 남기며 두려움에 떨다가 어느새 공중에 멈춰 서서 세상을 바라본다. 땅 위의 사물들이 발 아래로 납작 엎드린 모습이다. 안정과 불안의 경계 선상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키 큰 버드나무들이 난장이처럼 보인다.

 

미키마우스 공연을 본다. 노래와 춤, 대화로 관중들을 동화의 세계로 초대하고 있다. 공연 도중에 무대 바깥으로 튀어나온 배우들이 관중석 사이로 달려오고 사라지기도 한다. 관중들의 머리 위로 물방울들이 둥둥 떠다니다가 얼굴에 내려앉는다. 동화 속의 세계로 젖어들게 만든다. 누구나 한 때는 어린이었다. 칠순을 맞았지만 아직도 동심이 남아 분수처럼 뿜어 오르고 있다.

 

손녀들과 회전목마를 탄다. 구름 속으로 백마가 달리고 있다. 하늘나라 어느 곳에 황금빛 궁전이 있을까. 어린 시절의 왕자가 되어 아름다운 공주가 사는 왕궁으로 달려 가본다. 마법에 걸려 잠자고 있는 공주를 어떻게 살려 낼 수 있을까. 옛날 동화책엔 왕궁이 나오고 공주는 마법에 걸려 잠들어 있다. 한 왕자가 마법을 깨트리고 공주를 살려낸다. 왕궁은 행복 추구나 쾌감을 불러일으키는 모든 조건을 가지고 있었음이 아닐까.

 

8시에 불꽃놀이가 시작된다. 서양의 왕궁 모습의 뾰족 지붕 위로 치솟은 불꽃들이 어둠 속을 화려하게 수놓는다. 어린이들과 어른들의 탄성이 터져 나온다. 어둠을 밝히는 다양한 불꽃들의 향연……. 어둠의 공간을 순식간에 아름다움으로 물들이는 불꽃놀이는 선명하고도 신비롭다. 불꽃은 어둠을 뚫고 치솟아 꽃이 되고 별이 된다. 그러나 최상의 아름다움일수록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네 명의 손녀들은 어느새 아빠 엄마 품에 안겨 잠들었다. 디즈니랜드의 하루도 막을 내리고 있다. 어른들은 어린이들을 데리고 귀가할 시간이다. 놀이 체험은 어린이들의 기억 속에 무엇이 되어 남을까. 놀람, 신바람, 흥미, 무서움, 쾌감……. 꿈과 쾌락의 즐거움만이 아닌 삶의 과정을 축소하여 미리 맛보여 주고 있음이 아닐까.

 

칠순이 되어 처음으로 손녀들과 놀이기구를 타고 동심의 나라로 가서, 한 분을 만난다. 한 번도 디즈니랜드에 와 본 적 없는 그리운 어머니의 얼굴이 달처럼 훤히 떠오른다.

엄마, 저승에서라도 디즈니랜드에 함께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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