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13 18:23
천하 제일 행서인 王羲之의 난정서를 공부합니다.
난정서에 얽힌 이야기는 뒤로 하고 우선 임서를 통해
정확한 필법을 익힐 기회입니다.
몇회에 걸쳐 문단별로 동영상을 올리겠습니다.
永和九年,歲在癸丑,暮春之初,會于會稽山陰之蘭亭,修禊事
群賢畢至,少長咸集。此地有崇山峻嶺,茂林修竹,又有清流激
湍,映帶左右,引以為流觴曲水,列坐其次。雖無絲竹管絃之
盛,一觴一詠,亦足以暢敘幽情。是日也,天朗氣清,惠風和暢,
仰 觀宇宙之大,俯察品類之盛,所以游目騁懷,足以極視聽之娛,
信可樂也。夫人之相與,俯仰 一世,或取諸懷抱,悟言一室之內,
或因寄所託,放浪形骸之外。雖趣舍萬殊,靜躁不同,當其欣 於所遇,
暫得於己,快然自足,不 知老之將至。及其所之既倦,情隨事遷,
感慨係之矣。向之所欣,俛仰之間,已為陳跡,猶不能不以之興懷。
況修短隨化,終期於盡。古人云︰「死生亦大矣。」不痛哉!每覽昔人興感之由,
豈 若合一契,未嘗不臨文嗟悼,不能喻之於懷。固知一死生為虛誕,
齊彭殤為妄作,後之視今, 亦猶今之視昔,悲夫!故列敘時人,錄其所述,
雖世殊事異,所以興懷,其致一也。後之攬者,亦將有感於斯文。
영화(永和) 9년 계축년 늦은 봄 초(3월 3일)에 회계산(會稽山) 북쪽 난정(蘭亭) 에 모였는데,
계제사(禊祭祀)를 지내기 위해서이다.
많은 현인들과 젊은이 늙은이들이 모두 모였구나.
이 곳은 높은 산과 가파른 고개가 있고, 무성한 숲과 길게 자란 대나무가 있도다.
또 맑은 시냇물과 격동치는 여울이 좌우를 둘러싸서 비추고 있구나.
굽이치는 물을 끌고 와 잔을 흘려 보낼 수 있게 만들어 놓고, 차례대로 둘러앉으니,
비록 거문고와 피리는 없지만 술 한 잔 마시고 시 한 수를 읊으니, 그윽한 감정을 활짝 펴기에 충분하구나.
이날 하늘은 깨끗하고 공기는 맑으니 은혜로운 봄바람은 따스하고 부드럽구나.
우주의 넓음을 우러러 살피고 만물의 풍성함을 굽어 살피며,
눈을 돌려 회포를 달리니, 보고 듣는 즐거움이 충분하여 진실로 즐길 만하구나.
사람이 태어나 하늘을 우러러 보고 땅을 굽어보며 한 세상을 서로 더불어 살아감에,
혹 어떤 이는 마음에 품은 생각을 서로 만나 한 방에서 기쁘게 이야기하고,
혹 어떤 이는 마음속에 들어있는 생각을 마음대로 몸 밖에서 노닐게 하는구나.
이와 같이 사람들은 생각이 만 가지로 다르고 고요하고 성급함이 비록 같지 않으나,
저마다 자신이 처한 경우가 기쁘게 느껴지는 때에는 잠시나마 자기 뜻을 얻어 유쾌하게 스스로 만족하여,
늙음이 다가오는 것을 알지 못하는구나.
그러나 그가 즐기는 일에 권태를 느끼거나 또 자신의 감정이 그 일에 따라 옮겨가서 변하게 되면,
여러 가지 감회가 이어서 나온다. 이전의 즐거웠던 일이 잠깐 사이에 옛 일이 되어 버리니,
그 것 때문에 감회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하물며 목숨의 길고 짧음이 자연의 조화를 따라 마침내는 죽음에 다다르는 것이니,
옛 사람이 말하기를 "살고 죽는 것이 또한 큰 일이다"라고 하였으니, 어찌 애통하지 않겠는가.
옛 사람이 가졌던 감회를 매번 볼 때마다 내 생각과 합치되는 듯하다.
아닌게 아니라 글을 보고 애도하지만, 마음속에서 그것을 깨우칠 수 없었으니,
죽고 사는 일이 같다는 것이 허황하다는 것을 참으로 알 것 같다.
(800세까지 오래 산) 팽조 같다는 것도 망령된 일이다.
뒷날 지금을 보는 것이 또한 지금 우리가 옛 사람을 보는 것과 같을 터이니, 슬픈 일이로구나.
그래서 이곳에 모인 사람들을 순서대로 적고, 그 지은 바를 기록하니,
비록 세상이 달라지고 세태도 변하겠지만 회포를 일으키는 까닭은 그 이치가 하나이다.
후세에 이 글을 읽는 사람도 이 글에 대해 감회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중국,일본에서 묵필가들의 사랑을 받아온 서성 왕희지의 난정서는 진품은 사라지고,
모사품만 전해오고 있다. 28행 324字인 蘭亭集書는 당나라 때 <빙승소 憑承素>가 모사했다는
신용본(神龍本)으로 우리가 흔히 보는 붉은 인장이 수없이 찍힌 상기 작품이다.
북평자금성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갈 之자가 20번이나 나오는데 모두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다.
서예하시는 분들은 난정서를 몇 번이나 임서했는지 따지는 제일행서첩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쉽게 배울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오늘날 ‘난정서´라는 이름으로 전해오는 글씨는 후대 명필이 왕희지의 글씨를 보고 베껴 쓴 임본(臨本)이다.‘
난정서´의 대표적인 임본으로 전해 오는 것은 5가지가 있다.
베이징 고궁박물원에 있는 우세남(虞世南)의 임본, 저수량(遂良)의 모본(摹本), 풍승소(馮承素)의 모본,
황견본(黃絹本), 비석 탁본인 정무본(定武本)이 있다.
우세남의 것이 가장 본래의 모습에 가깝다고 평하지만 어쨌든 모두 베껴 쓴 것이다.
유명한 ‘대당삼장성교서(大唐三藏聖敎序)´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왕희지 글씨를 모아 돌에 새긴 것이다.
그 외 왕희지 글씨로 유명한 ‘초월첩(初月帖)´,‘원환첩(遠宦帖)´,‘평안첩(平安帖)´,‘상란첩(喪亂帖)´,
‘쾌설시청첩(快雪時晴帖)´등도 모조리 다른 사람이 옮겨 쓴 것이다.
옆에다 대고 베낀 것도 있고, 세필로 정교하게 윤곽을 그리고 가운데를 먹으로 채운 쌍구전묵(雙鉤塡墨)의 복사본도 있다.
보통 사람이 보면 깜쪽같이 친필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오늘날 전해오는 왕희지의 글씨는 모두 후세에 만들어진 복제품이라는 말이다.
2014.11.27 05:25
2014.11.28 10:59
왕희지와 난정서
王義之 蘭亭序(353년) 臨摹本(八柱第三本), 북경고궁박물원 소장
자고로 한·중·일을 막론하고 글씨하면 떠오르는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왕희지(王羲之)이다.
그가 출현한 이후 지금까지도 서가든 서가가 아니든 글씨를 논할 때면 언필칭 왕희지를 운운한다.
단지 천하명적을 남겼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왕희지는 오랜 역사를 통해 수없이 재평가되면서 신화를 축적하였고,
이로써 서성(書聖)의 지위에 오르며 신비로운 인물이 되었다.
한 사람이 역사를 만들고 역사가 다시 영웅을 만든 것이다.
동진(東晉)시대 목제(穆帝)의 치세기인 영화(永和) 9년, 서기로는 353년,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삼월 삼짓날,
중국 회계군 산음(山陰)에 위치한 난정(蘭亭)에서
천하의 풍류객들이 모여 사악한 기운을 씻어내는 경건한 의식을 행한 뒤,
유상곡수(流觴曲水)의 잔치를 베풀었다.
쌍세창(桑世昌)의 「난정고(蘭亭考)」에 의하면 당시 행사에는 회계내사였던 우장군(右將軍) 왕희지,
그리고 그의 아들과 인척들, 사안(謝安)과 사만(謝萬), 손작(孫綽) 등 42인이 참석하였다고 한다.
동진의 권문세가인 왕(王)·사(謝)·유(庾)씨를 비롯하여 그 지역의 현사들이 참여한 유상곡수연에는
왕희지 일가만 10명이 참가하였고, 그 중에는 희지의 장자 현지(玄之)와 5자 휘지(徽之),
7자 헌지(獻之)도 포함되어 있었다.
유상곡수연은 맑은 냇물을 끌어들여 포석정처럼 구불구불한 물길을 만들고,
여기에 잔을 띄워 잔질하며 자신의 차례가 올 때까지 시작(詩作)하는 것이다.
계곡의 아름다운 풍광이 시상을 일으키고 술이 시흥을 돋구자 하나 둘씩 시를 읊어내기 시작하였다.
예민한 감성의 소유자였던 왕희지는 4언시와 5언시를 각각 1편씩 지었다.
이렇게 두 수를 지은 사람은 11인, 한 수를 지은 사람은 15인이었으며,
시를 짓지 못하여 벌주 석 잔을 마신 사람은 16인이나 되었다.
대안도(戴安道)를 찾아간 일로 유명한 희지의 5자 휘지도 두 수를 지었으나,
역사상에서 희지와 더불어 이왕(二王)으로 불리는 7자 헌지는 끝내 시를 짓지 못하였다.
잔치가 끝날 무렵, 시를 한 곳에 모아 시집을 엮자는 말에 모임의 중심이었던 왕희지가
흥을 타고 즉석에서 시집 서문을 지어 쓴다.
세로 폭이 한 자를 조금 넘긴 질긴 견사지(繭絲紙)가 앞에 놓이고
쥐수염으로 만든 예리하고 탄력 있는 서수필(鼠鬚筆)이 놓여졌다.
잠시 흥기된 마음을 가라앉혀 평심정기(平心靜氣)를 이룬 후,
이윽고 필단을 곶추세워 가슴속 깊은 언저리의 흥회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누구나 그러하듯 붓을 처음 내리 찍을 때는 신중하되 과감하여야 한다.
글씨의 기상과 크기 그리고 절주가 모두 여기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永和九年歲在癸丑暮春之初…'.
무슨 일이 언제 어디서 있었는지를 알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므로 문장은 이렇게 시작하였다.
붓에 흥을 싣는 데는 행서가 가장 적격이다.
첫 행이 13자로 끝나고 다음 행으로 넘어가면서 행간이 결정되고 전체적인 장법이 예견된다.
행간이 지루하지 않으면서 대소강약의 절주를 느끼기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희지가 앞서 읊었던 두 편의 시처럼 늦은 봄날의 아름다움과 한없이 즐거운 시회를 술회하는 것으로
문장은 이어진다.
동진시대 353년 늦봄에 열린 난정에서의 멋진 풍류는 이렇게 고스란히 역사에 남겨지게 되었다.
/이은혁(한국서예문화연구회 이사장)
2014.11.29 16:07
천하 3대 행서첩 비교 분석
왕희지의 난정서, 안진경의 제지고, 소부의 한식첩을 비교한 자료가 있어
옮겨 놓는다. 소부의 한식첩은 내가 이미 공부하여 요약 번역한 일이 있고,
안진경의 제지고문은 몇 번 읽었으나 아직 완벽한 지식을 얻지 못했다.
이런차에 중국 서예가가 심도있게 비교 분석한 것을 여기 더한다.
이제 남은 과제는 <난정서>의 진위 여부와 당태종 이세민과의 관계를
밝혀 볼 것이다.
2014.12.14 10:34
난정서에 서로 다르게 쓴 갈 지 之字 20 字
같은 문장에서는 각기 다른 모습을 씀으로서
전체 문장을 아름답게 보이도록 한다.
즉 한 문장에 같은 字가 나타날 때 글자형을 다르게 쓴다.
2014.12.14 14:41
2014.12.14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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蘭亭集序 난정집서
王羲之 왕희지
永和九年 영화 9년
歲在癸丑 暮春之初 해는 계축년 3월 초
會於會稽山陰之蘭亭 회계 산음현의 난정에 모여
修禊事也 계제사를 거행하였다
群賢畢至 少長咸集 여러 현자들이 모두 모이고 젊고 나이든 이 함께 모였다.
此地有崇山峻嶺 이 땅은 높은 산 가파른 고개 있는 곳
茂林脩竹 무성한 숲과 높은 대나무들
又有清流激湍 또 맑은 시냇물 급한 여울이
映帶左右 좌우를 비추는 곳
引以爲流觴曲水 물을 끌어 들여 유상곡수라 여기고
列坐其次 그 옆에 나란히 앉았다
雖無絲竹管弦之盛 비록 성대한 음악소리 없지만
一觴一詠 술 한잔에 시 한수
亦足以暢敘幽情 역시 그윽한 정취 화창하게 펼치기 족하네
是日也 오늘은
天朗氣清 惠風和暢 하늘은 맑고 공기는 청명하며 따사로운 바람 화창했다
仰觀宇宙之大 우러러 우주의 장대함을 보고
俯察品類之盛 굽어보며 사물의 무성함을 보네
所以遊目騁懷 눈이 가는대로 회포를 달리게 하고
足以極視聽之娛 지극한 보고 듣는 즐거움에 만족하니
信可樂也 가히 즐길만 함이 확실하다
夫人之相與 俯仰一世 무릇 사람이 함께 어울려 한세상을 함께하는데
或取諸懷抱 여러 회포를 가지고
晤言一室之內 한방에서 얼굴 마주하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或因寄所托 혹은 자연이 맡긴 이유를 찾아
放浪形骸之外 자신을 떠나 방랑하기도 한다
雖取捨萬殊 비록 취하고 버림이 모두 다르고
靜躁不同 고요하고 조급함이 같지 않지만
當其欣於所遇 만나는 것에 당연히 기뻐하고
暫得於己 快然自足 잠시 자신에게서 자신을 얻고 스스로 만족함에 기뻐하며
不知老之將至 늙음이 장차 온다는 것도 모르리라
及其所之既倦 그러다 이미 싫증나는 바가 있고
情隨事遷 세상사 바뀜에 따라 정도 바뀌고
感慨繫之矣 그윽한 마음 또한 그에 묶여 있지 않던가
向之所欣 俯仰之間 그 기뻤던 쪽으로 향해 고개 숙였다 드는 사이
已爲陳跡 이미 흔적이 되네
猶不能不以之興懷 어찌 즐거운 회포로 여기지 않을 수 없겠는가
況脩短隨化 終期於盡 하물며 길고 짧음도 변화가 있어 반드시 그 끝이 있으니
古人云 옛 사람이 말하기를
死生亦大矣 豈不痛哉 삶과 죽음 역시 크다 했으니 어찌 비통하지 않으리
每覽昔人興感之由 매양 옛사람의 감흥의 이유를 보면
若合一契 마치 계약처럼 일치하니
未嘗不臨文嗟悼 일찌기 글을 대하면 탄식하지 않을 수 없고
不能喩之於懷 마음 속에 그것을 깨우쳐 줄 수 없었다
固知一死生爲虛誕 삶과 죽음을 하나라고 하는 것은 허망한 소리요
齊彭殤爲妄作 팽조와 요절을 나란히 하는 것은 망령된 짓이다.
後之視今 후인들이 지금을 보는 것은
亦猶今之視昔 지금 우리가 옛 사람들을 보는 것과 같으니
悲夫!故列敘時人 슬프다 그래서 지금 사람들을 순서대로 적고
錄其所述 그 지은 바를 기록했다
雖世殊事異 비록 세대가 달라지고 일이 바뀌어도
所以興懷 其致一也 감회를 일으키는 바는 아마 같을 것이다.
後之覽者 뒷날 보는 사람은
亦將有感於斯文 역시 장차 이 글에 느낌이 있으리.
<용어해설>
수계(修稽) -- 옛날 중국 周나라 때 부터 전해오던 풍습으로
음력 3월 초순의 지지중 뱀의 날[巳日]에 헤당되는 날에
물가에서 각종 악을 쫓고 복을 영접하는 제사를 지냈다.
이것이 위진남북조시대에 와서는 봄날 야유회 정도로
변질되었다. 뱀이 허물을 벗 듯 각종 액운을 털고 복을 빌기
위해 몸을 깨끗이 씻기 위해 물가에서 행하여 지지 않았나
여겨 진다. 겨울 동안 샤워도 하지 못했으니 물가에서
떼미는 행사 였으리라, ㅋㅋㅋㅋ
流觴曲水 (유상곡수) -- 옛선비들의 물놀이 일종으로 상류에서 흘러 오는
술잔이 멈추면 詩를 한 수씩 지어 읊고, 시를 짓지
못한 문사는 벌주를 3배씩 마셨다고 한다.
유상이란 물에 뜨내려오는 술잔을 말하며
곡수는 굽어진 곳의 물로 술잔이 멈추는 곳이다.
회계 - 절강성 소흥 동남쪽의 산이름 또는 절강성 지역의 옛 군명
산음 - 산음현. 회계군의 군치소. 지금의 소흥
계사 - 매년 3월의 첫 巳일에 계곡에서 몸을 씻고 자연에 제사하는 일
팽조 - 800세까지 살았다는 전설상의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