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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안개 / 김완하

2014.05.11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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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안개


비오는 날 산길 따라 오르다
인적이 드문 산의 뒷편으로 발길을 옮겼다.
흠벅 젓은 오리나무 참나무 어께마다
물방울을 달고 서 있었는데,
안개가 산허리부터 서서히 감아 오르는 것을 보았다.

산의 정상까지 안개 차오르자
갑짜기 산이 기우뚱하는 것을 느겼다.
그때 산이 안개 속에서 살며시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 산 아래 계곡에서
콸콸콸...  물소리나기 시작했는데,
그 소리 속으로 산이 들어가
바위처럼 웅크리고 흐느끼는 것을 보았다.

물소리 더욱 세차게 바위를 때리며
산의 울음소리 가려 주었고
산의 덜썩이는 어깨를 감추기 위해
계곡마다 칡넝쿨이 흩어졌는데,
나는 그 물소리에 귀를 빼앗겨
산이 사라진 것조차 알지 못했다.

비오는 날이면 산은 잠시 지친 어께를 허물어
조용히 무너져 계곡에 내려가
물소리에 기대어 울다 올라 왔는데
산의 빈자리를 가리는 안개를 보며
사람들은 세상의 찌든 떼를 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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