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4.26 16:13
녹차의 참맛
정 목 일
녹차의 맛은 우려서 낸 맛이다.
산의 만년 침묵을 우려내면 무슨 맛일까.
파르르 새로 솟아난 신록의 빛깔을 우려내면 무슨 맛일까.
산의 명상을 어떻게 맛볼 텐가.
바위의 그리움을 우려내면 그대의 얼굴이 떠오를까.
달빛처럼 투명한 맛을 어떻게 머금을 수 있을까.
맑아서 깊어진 마음을 어찌 알 수 있을까.
내 일생을 머금으면 이런 맛을 낼 수 있을까.
녹차의 맛은 활활 타는 쇠솥에서 덖어서 낸 맛이다.
오장육부를 불에 볶아서, 순하고 천진하게 만들었다.
샘물과 바람과도 마음을 통하는 벗이 되었다.
녹차의 맛은 손으로 비벼서 낸 맛이다.
햇살, 달빛, 바람, 이슬, 세월을 잘 비벼내서 한 잔의 차를 마셔볼 텐가.
누구와 어디서 마신들 상관할 바 없이.
녹차는 물맛이다.
산이 높을수록 계곡은 깊고, 땅속에 스민 물은 담담해진다.
새벽 종소리가 온 몸의 신경을 깨우듯 한 잔의 물이 핏줄의 미세관(微細管)까지 와 닿는다.
어찌 잎의 맛뿐이랴. 물의 맛뿐이랴. 바람의 맛뿐이랴. 달빛의 맛뿐이랴.
녹차엔 우리 자연의 성품과 눈매와 생각이 쌓여, 입에 오래오래 음미하게 만든다.
녹차의 맛은 하늘 속으로 첩첩으로 벋은 산 능선과 만년을 유유히 흘러내린
강물의 유선(流線)이 만나서 다정히 손잡고 있다.
녹차는 맛을 탐하지 않는다.
무심(無心)의 바닥이다. 풀벌레가 밤새도록 별들을 바라보며 발신음(發信音)을 내고 있다.
녹차의 맛엔 그리움의 피리소리가 젖어있다.
흰옷을 입고, 한지 방문을 바라보고, 백자를 빚어내던 우리 민족이 지닌 심성의 맛이다.
차는 무엇이며, 인생은 무엇인가. 눈을 감으면 영원 명상이 아닌가.
인생과 자연과 여백의 맛이 아닐까. 시․공간을 초월한 영원과의 눈맞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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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정말 神筆에 가까운 글이요 상념이다.
한국 최고의 수필가요, 시인의 글이다.
젊었을 때는 녹차 한 잔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맹물 같은 녹차 대접을 받으면 싱그웠다.
세월이 흘러 이제 나도 녹차 맛을 알 늙은인가.......
녹차는 마실 때
손에 느끼는 찻잔의 온기를 먼저 받아들이고,
천천히 코에 스치는 향기를 먼저 음미해야 하고,
다음에 차의 온기와 향을 혀로 느끼며 목구멍을 적신다.
어떤 풀도 차보다 먼저 꽃을 피우지 못하고
만물을 기르는 바람이 차의 꽃봉오리를 맺게하면
봄이와서 황금빛 차 싹이 고개를 내민다.
푸른 구름 같은 김이 바람에 끌려 끊임없이 피어 오르고,
백화같은 거품이 빛을 내며 찻잔가에 모인다.
첫잔에선 목구멍과 입술이 적셔지고,
두 잔째는 외로운 시름 사라지며
세 잔째는 차의 향기 창자에까지 미치어
가슴 속엔 오만가지 근심걱정 사라지네
넉 잔째는 가벼운 땀이 솟아
평소의 불만
땀구멍 통해 모두 사라진다네.
닷 잔째엔 살과 뼈가 맑아지며
엿 잔째는 신선의 경지에 이르니
일곱 잔까지 마실 것도 없이
두 겨드랑이에 맑은 바람 이는 것을 느끼게 된다.
신선이 논다는 구름산이 있다면
내 투명 날개 달고 바람 타서 그곳에 가고저 한다네.
속세의 일을 잊고, 절대자유를 얻는 유세독립( 遺世獨立)의 경지요.
우화등선(羽化登仙)하여 하늘을 날으는 빙허어풍(憑虛御風)의 기분이
녹차를 마시는 즐거움이리라.
서예 공부가 끝나면 김옥기 수필가가 만들어 따라주는
녹차 열 잔을 마시며 우리는 신선이 된 것처럼----- 콧 등에 땀방울을 달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