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4.07 16:28
지금 이 순간
鄭 木 日
지금 이 순간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만큼 소중한 일도 없을 성싶다.
내가 지금 별을 보고 있음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밤하늘에 별 하나를 바라보고 있음은 기적 같은 순간이다. 저 별빛이 내 눈동자 속으로 들어오기까지 몇 *광년(光年) 전에 출발하여 우주 공간을 거쳐, 비로소 만나게 되었다. 나 또한 무심히 저 별을 보지만, 오랜 세월 끝에 이 순간을 맞이했다는 사실이다. 기적 중의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음도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한 방울의 물들이 모여서 도랑물이 되고, 도랑물이 모여서 시냇물이 되고, 시냇물이 모여 강물이 되면서 쉴 새 없이 몇 백리를 달려 와 지금 나와 만나고 있다.
매화는 봄철이면 볼 수 있는 꽃이지만, 일 년이 지나야 마음을 나눌 수 있다. 매년 꽃을 피우는 매화이지만, 필적마다 같은 꽃이 아니다.
일상의 깨달음은 ‘지금 이 순간’을 체감하는 일이다. 지금 이 순간이야 말로 내가 향유할 수 있는 가장 존귀한 시간이다.
2010년 유월, 파리에 간 적이 있다. 이곳에 갈 적마다 유명미술관을 찾아간다. 나는 예외 없이 루브르(LOUVRE)미술관과 오르세(ORSAY)미술관을 관람했다. 미술사(美術史)에 장식된 세계 명화들을 직접 보고 감상할 수 있다는 건 살아있음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화가들이 그려놓은 것은 어떤 것들인가. 화가들이 발견해낸 아름다움은 과연 무엇인가. 인생에 있어서 무엇을 발견해낸 것일까. 그들이 포착해 내고 얻어낸 아름다움과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황홀경에 취해 여러 화가들이 화폭에 담아낸 장면들을 살펴간다. 삶이란 스쳐가는 하나씩의 장면이 아닐까.
목욕하는 여인, 머리를 빗질하는 여인, 풀밭 위의 대화, 나체로 잠든 여인상, 봄날 하오의 호수, 무대 위의 발레 무용수,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 모자를 쓴 젊은 미인, 빨간 옷차림을 한 여인의 응시, 식탁 위 과일이 놓인 풍경, 가을 정원의 햇살, 무대 위의 무녀들, 잠든 고양이를 안고 있는 열두 살 소녀……,
천재 화가들이 그려놓은 명작들은 삶의 스쳐가는 순간의 발견이다. 지금 이 순간의 아름다움과 깨달음이다.
나는 고흐의 명화들로 만든 카렌더를 샀다. 그의 그림과 대면하면서 창작 혼을 느끼고 싶었다.
옥빛 하늘을 배경으로 비뚤비뚤한 나뭇가지들이 꿈틀거리는 듯 솟아올랐고, 백매(白梅)는
꽃망울을 펼쳐 은은히 매향(梅香)을 뿌리고 있다. 겨울 혹독한 추위와 설한풍(雪寒風)을 견뎌내고 제일 먼저 봄을 알리는 매화의 고고한 기상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 땅과 사람을 넣지 않고 옥빛 하늘만을 배경으로 그린 이 작품은 매화의 뜻과 향기를 하늘만이 알고 있다는 것일까. 해바라기를 그린 정물화, 해안 모래밭에 정박한 보트 네 대와 해변에 떠있는 배들, 다리 밑으로 지나가기 전의 보트가 있는 강변 풍경, 봄과 여름의 전원 풍경들을 바라본다.
화가들의 취한 소재와 장면들은 사소한 일상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스치고 지나가는 풍경의 표정이고 느낌들이다. 꽃, 미인, 계절의 절경도 금세 사라지고 만다. 화가가 일생 중에서
몇 점 남겨놓은 명품들은 평범한 순간의 진실한 모습이고 숨결이고 아름다움이다. 세월이 흘러 퇴색되고 시들어버릴 아름다움이다.
나는 미술관에서 깨닫곤 한다. 화가들이 영원 속에 그려놓은 것은 ‘지금 이 순간’의 삶과 소통과 공감과 노래임을. 지금 이 순간의 모습을 담는 작업이었다. 심장 박동소리를 느끼는 이 순간의 표정과 행복과 시․ 공간의 만남이이라는 것을 확연히 느낀다.
시인들이 오랜 언어의 조탁(彫琢)을 거쳐 남겨놓은 시들도, 영감(靈感)의 울림도, ‘지금 이 순간’의 의미를 꽃피워 내려는 것이 아닌가.
나는 기회가 오지 않음을 한탄하면서 내일을 꿈꾸며 지금 이 순간을 놓쳐버린 시간 낭비자가 아니었던가.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때가 오기만을 기다려 온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던가.
지금 이 순간 나는 어디에 서 있으며,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내가 처하고 있는 시․ 공간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에 대한 자문자답(自問自答)은 삶의 깨달음을 얻게 한다.
지금 이 순간 숨 쉬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한 일이며, 남을 돕는 것만큼 소중한 일도 없다. 꽃, 청춘, 무지개, 노을 등 아름다운 것들은 일시성을 지녔다. 짧은 그 순간에 최상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인간이 영원을 얻을 수 있는 지혜는 ‘지금 이 순간’을 삶의 의미로 만드는 일이다. 지금 이 순간 삶의 진실을 꽃피워 내는 일이다.
나는 영원에 눈이 어두워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왔음을 후회한다. 나에게 주어진 이 순간의 소중함을 느끼며 삶을 의미의 꽃으로 피워내고 싶다. 나는 진정 지금 이 순간에 무엇을 하고 있는가.
*광년(光年): 천체와 천체의 거리를 나타내는 단위. 1광년은 빛이 초속 30만 km의 속도로 1년 동안 나아가는 거리로 9조 4670억 7782만 km이다. .
2011.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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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이 순간 > 봄볕에 새싻이 돋고,
지금 이 순간 바람에 꽃이 핍니다.
오늘 봄을 맞는 벅찬 감동에
몇 캇트 사진을 핸드폰에 담았습니다.
나는 봄날의 꽃피는 모습을 담으려 했지만
내가 찍은 사진은 꽃핀 후의 모습이였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대한 사색 >
시간 속에 사는 비늘 없는 물고기를 '순간' 이라 부르자.
시간을 일차원 직선 위에 쭉 그으면
'순간'이란 시간의 한 점이 있을 것이다.
이 점 속에 비늘 없는 물고기가 산다.
영원은 시간이 아니다. 형이상학적 개념이다.
이 지상 위로 지나간 모든 시간을 계단처럼 쌓는다 해도
영원에 닿지 못한다.
'순간 '이란 비늘 없는 물고기를 잡으려 발버둥치지만
순간이라는 물고기를 잡는데는 실패하고 만다.
사진 기자가 순간의 모습을 잡지만 그 순간의 모습이란
이미 지나간 모습, 구태가 되고 만다.
<이 순간>은 영원의 대문이다. 순간이라는 대문을 여는 순간
우리는 영원이라는 시간의 유람선을 타게 되는 것일까
영원은 시간 속의 실존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을 사모한다.
시간은 영원을 향해 달리지만 영원에는 정녕 미칠 수 없는 것.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영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