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난초 향기

2014.03.13 18:15

목향 Views:6357

난초 향기

鄭 木 日

 

 

몇 해 전에 한 문우로부터 난초 한 뿌리를 선물 받은 일이 있다.

등기 우편물이 와서 펼쳐보니 뜻밖에도 난초가 들어있었다. 화분에 심은 난초를 선물로 받아보긴 하였어도 등기 우편으로 받긴 처음이었다. 동봉한 편지를 읽어보았다. 그는 불현듯 난초를 보내고 싶어서 이런 방법을 택하였다고 했다.

 

편지글을 읽고 나니 마음속에서 난향이 풍기는 듯했다. 그는 지란지교(芝蘭之交)를 원했는지 모른다. 난초꽃이 피면 그를 초대하여 술을 마신다면 얼마나 운치가 있을 것인가. 달빛과 난향 속에서 차와 술을 마시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이 난을 살려서 잘 키워내야 한다는 임무가 부여되고 있음을 알았다. 난 재배의 경험이 없는 나로선 부담이기도 했다. 난초 전문점으로 가서 화분에 심어 안고 왔다. 희귀한 난을 보낸 것은 예사의 성의가 아니라는 말을 들었다.

 

정성이 부족했음인가. 한 달이 채 안 돼 난초 잎이 윤기를 잃기 시작했다. 난 전문점에 가서 영양제를 주입하였지만 끝내 시들어버리고 말았다. 난초를 살려 놓고서 난을 보내준 문우에게 답장을 쓰리라 생각했는데, 할 말을 잃게 되었다. 난초를 죽이고 말았다는 잔인한 말을 어찌 쓸 수가 있단 말인가.

 

답장을 보내지 못하고 몇 년이 지나갔다. 아무리 귀한 보배라고 할지라도 이것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있어야 한다. 난을 키울 수 있는 마음의 그릇이 나에겐 없었다. 세월이 지나도 난을 보내 준 문우는 나에게 묻고 있지 않을까.

난이 잘 자라고 있는가?’

 

난초를 기를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돼 있지 않음을 알았다. 마음의 여유가 없음을 애석하게 생각하였다. 난을 보내온 벗은 소식도 없는 나를 생각하며 얼마나 야속해 할까. 아예 난초도 기를 줄 모르는 사람으로 짐작하고서 잊어버리고 있지 않을까.

 

·고교 시절, 내 방문 앞 벽에는 난향십리(蘭香十里)’란 현판이 붙어 있었다. 난초꽃의 향기가 십리까지 뻗힌다는 말이다. 이 현판 글씨를 보며, ‘난초꽃이 향기롭다 한들 십리까지야 뻗힐 리가 있으랴?’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나 5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 향기가 은은히 내 마음 속에 풍겨오고 있음을 느낀다. ‘난향십리란 그냥 거리를 말하는 게 아니란 걸 알고 있다. 마음의 향기여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마음속에 흐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누가 우편으로 귀한 난초를 보낼 사람이 있을 것인가. 그 난초를 살려내어 꽃피워 내지 못한 일을 두고두고 애석하게 여긴다. 난초와 가까이 대화할 수 있는 인생 경지가 되지 못한 자신을 탓하고 있을 뿐이다.

나도 언젠가 마음속에 난초꽃을 피워서 맑은 향기를 멀리 벗에게 보내고 싶다.

No. Subject Author Date Views
375 부채(합죽선) 이야기 [4] file 귀담 2013.06.16 6960
374 궁체정자 작품연습 [4] file 정일헌 2015.06.01 6902
373 청포도 -- 이육사 / 이명환 [8] file 귀담 2013.05.26 6879
372 민족의 대서사시 [6] 전영숙(33) 2015.03.29 6853
371 절차탁마 대기만성 [1] file 귀담 2014.02.16 6853
370 도정 권상호교수 한자철학#1 [1] 귀담 2013.12.09 6829
369 소동파의 한식첩 [5] file 귀담 2014.05.26 6828
368 빗살무늬 토기 항아리 [2] file 목향 2015.05.08 6822
367 서예세상 : 도정 권상호 교수 [1] 귀담 2013.12.09 6776
366 베로니카의 <그리운 금강산> / 방준재 [3] 귀담 2013.06.09 6766
365 금문으로 쓴 한시 file 귀담 2013.02.12 6744
364 반딧불이 [2] file 귀담 2013.07.03 6708
363 도연명의 잡시 한 편 쓰다 [1] file 귀담 2014.02.02 6707
362 淸夜吟 청야음 [2] file 귀담 2013.09.29 6704
361 四字成語 --- 알묘조장 謁描助長이란. [3] file 귀담 2013.08.21 6657
360 백두산트래킹 -- 이병소(33) [3] file 귀담 2013.08.16 6649
359 한글 기초 --- 원필과 방필 귀담 2014.01.05 6643
358 한방에 끝내는 한자부수 [2] 귀담 2014.01.12 6638
357 판본체 [ ㅅ ] 과 [ ㅇ ] 필법 [2] 귀담 2014.01.05 6613
356 초서작품 [3] 귀담 2014.05.11 6526
355 玄潭 曺首鉉 선생 서예 전각 전시회 [1] file 귀담 2013.06.01 6385
» 난초 향기 [4] 목향 2014.03.13 6357
353 일신 또 일신 --日新 又 日新 [1] file 귀담 2013.10.25 6343
352 와! 이건....신이다 [1] file 전영숙(33) 2013.08.03 6302
351 고구마 --- 전영숙 (33회) [8] file 귀담 2013.10.01 6240
350 유상곡수(流觴曲水) 하던 신라 포석정 [1] file 귀담 2013.11.08 6220
349 대우주-- 외계 은하들 [5] 귀담 2013.08.18 6202
348 세기의 대결 10번기 [2] file 귀담 2014.01.30 6201
347 진주유등축제와 서울유등축제 [3] 목향 2013.08.13 6187
346 석재 서병오선생 추모전 관람 [3] 귀담 2013.11.13 6177
d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