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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버들

2014.02.24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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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버들

鄭 木 日

 

홀로 가야금을 뜯고 있다.

맑은 진양조(調) 가락이 흐른다. 섬섬옥수가 그리움의 농현(弄絃)으로 떨고 있나보다. 덩기 둥, 덩기 둥. 숨죽인 고요 속에 번져 나간 가락은 가지마다 움이 되어 파릇파릇 피어나고 있다. 움들이 터져서 환희의 휘몰이가락으로 넘쳐난다.

 

촛불은 바람도 없이 파르르 떨고 있다. 촛불이 되어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 수양버들 한 그루. 이제 싹을 틔우리라. 촛불이 바람에 펄럭이면서 떨어뜨린 촛농들이 움이 되어 맺혀있다. 움들은 꿈의 푸른 궁전이다.

 

수양버들은 깊은 밤에 잠들지 못하고 한 땀씩 수()를 놓고 있다. 바늘귀로 임의 얼굴을 보며, 오색실로 사랑을 물들인다. 모든 나무들이 태양을 향해 팔을 벌리지만 수양버들만은 임을 맞으려 땅 아래로 팔을 벌린다.

 

부끄러워서일까. 두근거리는 마음을 보이지 않으려는 듯 방문 앞에 주렴을 드려 놓았다. 초록 물이 뚝뚝 떨어질 듯하다. 축축 늘어뜨린 실가지가 오선지 인양, 그 위에 방울방울 찍어 놓은 음표(音標)에선 봄의 교향악이 흐른다.

 

수양버들은 목마른 지각을 뚫고 솟아오른 분수이다.

오랜 침묵에서 말들이 터져 나와 뿜어 오른다. 죽음을 뚫고 소생한 빛의 승천이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손길. 닿기만 하면 굳게 닫혔던 마음이 열리고 막혔던 말들이 꽃을 피우리라.

 

누가 보낸 것일까. 먼 데서 온 육필 편지이다.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깨알 같은 글씨. 방금 움에서 피어난 언어. 눈동자 속에 파란 하늘이 보이고 따스한 체온이 느껴진다. 마음이 먼저 임에게로 달려가고 있다.

 

수양버들은 목욕하고 난 열 여섯 살 소녀이다.

긴 머릿결에 자르르 윤기가 흐르고 머리카락 올올 마다 봄의 촉감이 느껴진다. 실비단보다 부드럽게 치렁치렁 휘날리는 머릿결에서 사랑의 향기가 풍긴다.

 

출렁출렁 뻗어 내린 실가지가 물가에 닿을 듯하다. 물에 내려와 헤엄치는 오리를 보고 있다.

바람은 물 주름을 일으키며 지나고 개울둑에선 아지랑이가 아물아물 피어오른다. 한가로운 초록빛 평화. 오리와 물과 바람의 말이 햇살에 반짝인다.

 

집을 지으면 창밖에 수양버들을 심고 싶다.

봄이면 톡톡 노크하며 얼굴을 내밀 때, 창을 활짝 열어 포옹하고 싶다. 이제 막 터져 나온 꿈 빛 목소리. 은밀하고도 숨 막히는 속삭임, 터질듯 부풀어 오르는 가슴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봄이면 수양버들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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