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2.07 04:15
무수 무량(無數 無量)
정목일
빈 들판에 서서 한 해의 끝자락을 바라보고 있다.
겨울 들판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농부들도 집으로 돌아간 지 오래이다.
들판을 가득 채운 빛깔들은 어느새 해체되어 자취 없이 사라졌다.
형형색색으로 넘실거리던 생명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벌거숭이가 된 느티나무에 이마를 맞대고 한 해를 생각해 본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겨울나무처럼 일 년에 한 번쯤 옷을 벗어버리고 싶다. 어떻게 남보다 더 많이
갖출 수 있을까, 전전긍긍하며 살아온 나날이 아니었던가.
하루, 일년, 천년을 구분하는 계산법도 인간이 필요에 의해 만든 것이 아닌가.
수(數)에 얽매이는 것은 탐욕, 집착, 한계를 드러내는 일이다.
일시성을 지닌 인간이면서 눈은 항상 영원에 두고 있었다.
영원을 수용하려면 수에 얽매여선 안 된다.
무엇에도 한정되지 않고 구애받지 않는 대 자유 속에 영원이 숨 쉰다.
영원과 대 자유는 무수(無數) 무량(無量)에 있지 않을까.
한계가 없어야만 영원이 깃든다.
천지 사방에 골고루 비추는 햇빛이 무수 무량이 아닌가.
봄이면 나무들마다 새 잎을 틔워 잎 하나씩이 모여
세상을 초록으로 변혁시키는 이 끝없는 되풀이.....
파도가 밀려와 모래톱을 적시는 끊일 새 없는 반복.
은하계 별들의 운행, 인간의 생로병사(生老病死)가 무수 무량의 세계가 아닌가.
꽃은 피었다 지고 한 생명이 숨을 거두는 순간,
또 한 생명이 탄생하지 않는가.
무수무량은 무한 무년이고 한계가 없을 성 싶다.
꽃처럼 피는 대로 피어나고, 지는 대로 지는 것이다.
영원 속에 태어났기에 영원 속으로 돌아갈 뿐이다.
빈손으로 왔기에 빈손으로 가는 것이다.
얻을 것도 없으며 잃을 것이 없는 세계다.
꽃이 떨어져 열매를 만들고. 그 열매가 떨어져야 새 생명을 탄생시킨다.
이 무수 무량한 법이 영원법이 아니고 무엇일까.
꽃으로 떨어져 열매를 맺는 일, 열매마저 내놓고 사라지는 것이
영원으로 돌아가는 일이 아닌가.
영원 속에 찰나를 발견하는 것이 무수 무량의 세계이다.
많은 수와 양에 집착하고,
최고 최선의 유일수를 얻으려고 매달리는 한,
어둠 속에서 벗어나지 어려우리라.
꽃이 지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하고,
강으로만 흘러 자신을 버리지 않으면 바다에 이르지 못하는 법이다.
이기와 한계에서 벗어나야 새 세계를 얻을 수 있음을 알 듯하다..
욕심과 증오는 마음의 눈을 멀게 하는 얼룩이 된다.
마음을 비워 맑게 닦지 않으면 영원을 볼 수 없으리라.
무수 무량의 세계에 들어야, 마음이 맑고 향기로워진다.
찰나와 영원, 죽음과 삶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 무수 무량일 듯싶다.
나는 하나의 모래알, 먼지의 한 알갱이에 불과하다..
파도의 한 물결이며 별빛의 한 반짝임일 뿐이다.
여든 여섯의 나이로 타계하신 어머니의 임종을 생각한다.
마지막 숨고르기를 하시고, 숨을 놓으시자 너무나 편안한 표정이셨다.
태어나실 때와 같은 표정이 아닐까 생각했다.
어머니는 말없이 무수 무량의 세계로 돌아가셨다.
영원을 맞이하신 표정이었고, 엄숙하고 아름다운 임종이었다.
곤궁하고 고통에 찬 일생을 보내셨으나,
탐욕과 집착에 벗어나 선량하고 평온한 삶을 사셨다.
물욕이나 세속에 집착하지 않으셨다.
이름 없는 풀꽃으로 피어 지내시다 무수 무량의 세상으로 가셨다.
한 해를 보내는 빈 벌판에서
어떻게 가진 것을 말끔히 비워 낼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들판엔 추위가 오고 눈이 덮일 것이다.
어둠이 내리면 별들이 뜰 것이다.
어느 한 부분이 자취를 감추면, 어느새 새로운 것이 자리를 메우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아.
애타는 사랑법도 마음 행하는 대로 놓아두어라.
타는 노을처럼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가슴에나 담아 둘 일 아닌가.
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처럼 무수 무량의 세계에 몸을 던져 버리고 싶다.
벌거숭이 느티나무에게 이마를 갖다 대고
나의 일 년, 나의 영원을 생각한다.
일 년의 삶을 한 줄씩 아름다운 목리문(木理紋)으로 그려 놓았을
나무의 일생을 생각해 본다.
하루의 햇살과 천년의 햇살을 가늠해 본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렸고 미래는 아직 다가오지 않았다.
인간은 오늘에 살고 있을 뿐이다.
오늘의 충실, 순간의 최선이 내일을 창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고난과 어려움을 겪는 오늘이 내 일생을 짜는 목리문이 아닌가.
하루하루가 내 인생을 짜는 영원의 고리가 아닌가.
일 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천년이 자취 없이 지나가고 있다.
겨울을 맞은 들판은 무수 무량의 세계에 빠져들고 있다.
2014.02.07 06:23
2014.02.08 03:26
최고의 글에 최고의 답글이 실렸습니다.
답글도 본글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서로 한 몸인것처럼 쉽게 말하지만
정녕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조동문의 답글도 무량무수의 부처님처럼 빛납니다.
기다리던 목향선배님의 글을 읽고 내 나름의 느낌을 적어 봅니다.
無量無數 壽光如來 <무광무수는 빛으로 부터 생겼다>
모든 종교는 그 탄생의 신비가 빛입니다.
우리가 태양계의 일원인 이상 빛에 의해서 생명을 유지하기에----
과학자에 의하면 이 태양까지도 수명을 다하는 날이 오겟지만----
우주가 빛에 의해서 태어났 듯, 부처님도 빛에 의해서 태어나고,
따라서 불교 경전에 나오는 부처님상이 무량무수가 아닌가 싶습니다.
무량무수는 글자 그대로 풀이한다면 량이 없어 셀수도 없는 것,
즉 셀수 없다는 것은 계(界)가 없는 것이다. 계가 없는 것이 마음이니
부처님은 우리의 마음이요, 삼라만상인 것 같습니다.
2014.02.09 01:10
<무량무수>를 제목으로 쓴 목향의 수필을 읽으며
한 편의 詩를 읽는 감동을 느낀다.
불교용어인 < 無量無數>를 주제로
詩의 형상을 빌려 <여백의 美>를 느끼게 설계하였으며
독자로 하여금 각 단락에서 사색의 향연으로 이끌어 간다.
작자가 느티나무에 이마를 기대고 여래멸후(如來滅後)를 생각하는 동안
우리는 눈내리는 하얀 겨울의 텅빈 들판에 서게 된다.
空則無得이요, 寂則無說이라 할까. 공하니 얻을 것이 없고,
고요하니 말이 없다는 금강경의 한 구절을 떠오르게 한다.
<무량무수>는 <非生非滅> 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 같다.
즉 태어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영원에 닿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목향의 글을 읽으며 나도 무량무수의 나를 찿아 나서야겠다.
눈을 잔뜩 지고 서 있는 뜰앞 사방나무에 이마를 맞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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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선배님의 수필은 정갈한 수정같습니다.
읽고 나면 가슴에 청량감이 남고 자신을 되돌아 보게하는 힘이 있습니다.
발틱해에 스러지는 눈을 보며 허무를 보았고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에서
비애를 느꼈다면 선배님의 수필에서는 비움의 철학이 느껴집니다.
이런 모든 것이 깊은 겨울 이어서 그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