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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공부> ::  신라 포석정은 어떤 곳인가?


천년 왕국 신라는 포석정에서 향락을 즐기다 망하고,

백제는 낙화암에서 술판 벌이다가 망했을까?

우리는 옛 초등학교시절 역사를 이렇게 배웠고,

보편적으로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

포석정이란 곳이 신라의 나태와 해이를 상징하는 곳일까?

역사는 언제나 승자의 기록이다.

그 승자의 기록이 잘못 쓰여졌을 때 후세에는 언젠가 다시 바로잡게 된다.

이것이 역사의 정도(正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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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55대 경애왕은 927년 음력 11월, 겨울에

후백제 견훤의 군대가 왕경을 쳐들어왔는데도

왕비 신하들과 포석정에서 잔치를 벌이느라 적이 오는 줄도 몰라 견훤에게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 때문에 지금까지도 포석정은 왕들의 놀이터로 알려졌고 신라 멸망의 현장으로 얘기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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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포석정 모습>


1995년에 발견된 <화랑세기> 필사본에도 포석정과 연관된 '포사(鮑祀)' '포석사(鮑石祀.

사(祀)는 제사를 뜻함)'란 말이 나와, 포석정이 사당의 기능을 했다는 해석이 더욱 설득력이 높아졌다.

또 포석사에 중요한 인물의 화상이 있었고 진골 이상 고위 신분이 결혼식을 한 장소로 기록되어 있었다.

                                                  < 대구 매일 신문기사>


포석정은 유상곡수 하던 곳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워 놓고 둘러 앉아 물 따라 흐르던 술잔이

문득 멈추면 그 앞에 앉은 사람이 즉석에서 詩를 읊는 낭만적인 물놀이 일종이다.

만약 둘러 앉은 문사들이 제 때 시를 읊지 못하면 벌주(罰酒) 세 잔을 단숨에 마신다.

이를 流觴曲水라 한다. 원래 제사의례의 일부였다.

음력 3월 상사일(上巳一: 삼짓날), 첫 번째 뱀의 날에 흐르는 물에 몸을 씻고,

악을 털어버리는 계욕(誡欲)이란 의례로서, 그렇게 목욕하고 제사지낸 다음

제물을 음복하며 시와 노래를 즐기는 것이 유상곡수다.

계욕을 뱀의 날에 하는 것은 뱀이 허물을 벗듯 한 해의 액을 벗고 다시 태어나라는 뜻이다.

중국의 명필 왕희지가 문사 47인들과 함께 유상곡수하며 쓴 글 서문이  유명한 <난정서>이다.

어떤 역사가는 포석정에서 행한 것은 유상곡수가 아니라 팔관회였다는 주장도 있다.

신라의 팔관회는 진흥왕 때 처음 열렸고, 토속신앙과 불교의식이 결합된 호국제사로서

고려 때까지도 이어진 제례행사였다.

경애왕이 포석정에 놀러 간 것이 아니라 국가의 위기상황에서 잘 헤쳐나갈 수 있도록

기원하기 위해서 포석정에 갔다가 견훤에게 살해 당하지 않았을까.

포석정을 술잔치 질펀히 벌이는 향락의 놀이터로 묘사한 것은 

경애왕에게 망국의 책임을 지우고 폄하하려는 의도에서 서술된 승자의 역사가 아닐까.


고려말 문인 이인로(李仁老)는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石虎宮中荊棘生 석호궁중형극생     [ 석호궁전 안에 가시가 나고 ]

銅馳陌上無人行  동치맥상무인행    [ 동타 언덕 위에는 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危亭寶石半零落  위정보석반영락    [ 우뚝히 선 보석정이 반이나 허물어졌는데 ]

殘月依依照古城  잔월의의조고성    [ 희미한 남은 달이 묵은 성에 걸려있다 ]

當時絲管盡悽咽  당시사관진처인    [ 그 당시 풍악들은 모두 슬피 목메는데 ]

泛泛金觴隨曲折  범범금상수곡절    [ 띄우는 금 술잔은 곡수 따라 흘렀거니 ]

中流空惜魏山河  중류공석위산하    [ 중류에는 속절없이 위나라의 산하가 아까운데]

醉鄕不管陳日月  취향불관진일월    [ 술에 취한 천지에는 진나라 일월이 관계없어라 ]


본 詩가 포석정을 가르켜 유상곡수하던 곳이라고 언급한 최초의 글이다.

보석정은 포석정을 뜻한다.

포석정에 얽힌 역사적 기록은 이곳에서 유상곡수의 잔치를 벌이고 있던 신라 경애왕이

견훤이 이끄는 후백제군에 사로잡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왕비와 궁녀들은 능욕을 당했다.

과연 경애왕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포석정에서 계제사 뒷풀이나 한가롭게 하고 있었을까?

여기에 3가지 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 견훤이 쳐 들어온 것은 927년 음력 11월이다. 한겨울 추위에 유상곡수가 가능했을까.

둘째 : 경애왕은 사태의 급박함을 깨닫고 왕건에게 구원군을 요청한 상태였다. 그런 왕이

           한가롭게 물놀이할 여유가 있었을까. 고을부(지금의 영천)까지 진격한 적군을 앞에 두고

           긴박한 상황에서 잔치를 벌이고 술판을 펼칠 임금이 있을수 있을까.

셋째 : 포석정의 위치가 불교성지 중심이다. <삼국유사> <화랑세기>는 포석정은 포석사로서

           국가 영웅을 모시는 사당이며 귀족들의 혼례를 치르는 곳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경애왕은 포석정에 잔치하러 간 것이 아니라

위기에 처한 국란을 타개하기 위해서 포석정에  조상과 신령께 빌러 갔다가

들어닥친 견훤군에 붙잡혀 스스로 자결하고 말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리라.


천년 신라의 멸망 원인은 어디에 있었을까 ?


<역사를 알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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