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7.04 14:28
문둥북춤
정 목 일
덩기덕— 덩더러러러—
쿵기덕— 쿵더러러러—
굿거리장단이 흐른다. 왁자지껄한 굿판에 문둥탈이 나와 춤을 춘다.
얼굴에 쓴 문둥탈은 고성 오광대의 어느 탈보다 크다.
살점이 뭉개지고 울퉁불퉁 일그러진 얼굴이 보기에도 징그럽다.
검은 천으로 더덕더덕 기운 옷차림새는 그냥 입었다기보다 걸쳐 놓은 듯한 느낌이다.
한 쪽 발은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이고 허리엔 동냥질할 때 필요한 쪽박 한 개와
짚신 한 짝이 궁상스럽게 매달려 대롱거린다.
뱃구멍과 앞가슴을 드러낸 채 문둥이는 굿거리장단에 맞춰 몸을 움직거린다.
우리의 춤은 흥과 감정의 총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술을 마시면 취하듯 흥에 취하면 춤이 된다. 멋에의 도취인 것이다.
어깨가 으쓱으쓱하면서 저절로 ‘좋다’, ‘얼씨구’하고 감탄이 나오는 것도
모두 멋의 이치 때문이다.
‘신바람’이라고 하는 이 흥을 일으키는 데는 가냘픈 손끝이 한없이 움직인다.
손끝이 움직임에 따라서 어깨의 곡선이 움직이고 발의 움직임과 표정이 달라진다.
우리의 춤은 손가락과 팔의 율동이 먼저 시작된다.
춤출 때 손을 감추기 위해 저고리의 두 소매에 길게 덧댄 소매의 옷인 한삼을 입기도 한다.
이 한삼을 입는 것은 손보다 더 아름답게 흐르는 선의 미를 얻기 위해서이다.
손이 상하 좌우로 흔들릴 때마다 한삼의 긴소매는 공간을 차고 나는 듯이 날리고
이에 따라 어깨는 제 멋을 살리며 으쓱거린다.
외씨 같은 버선발이 움직이는 듯하다가 멈추고, 멈추는 듯하다가 움직인다.
흐르는 듯이 앞을 나아가다가 돌아나가는 흰 버선발은 춤의 균형을 잡아 준다.
버들잎이 날리는 듯한 손가락의 섬세한 움직임,
물결치는 듯 흐느끼는 듯 가락에 따라 반응을 보이는 어깨의 선,
맵시 있는 사뿐한 발놀림은 우아하고 은근한 내면의 미를 잘 표현해 준다.
문둥북춤은 손가락이 오그라붙어 손가락의 섬세한 움직임을 살릴 수 없다.
병들고 굶주림에 지쳐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조차 없다.
한삼을 입은 것이 아니라, 몸에는 땟국이 흐르는 거렁뱅이의 옷차림새이다.
덩기덕—덩더러러러—
쿵기덕—쿵더러러러—
굿거리 장단이 계속된다. 고성 오광대는 문둥북춤으로 시작된다
문둥북춤은 슬픔의 춤이며, 한의 춤이다.
그래서 손과 발이 떨리고 팔과 다리가 떨리고 온몸이 떨리는 춤이다.
오그라붙은 손을 허공에 휘저으며 몸서리치는 모습은 처절하기조차 하다.
팔을 들어 공중으로 치켜 올리며 부르르 떠는 것은
하늘을 향해 한탄하며 뼈에 사무친 신음을 토해 내는 모습이다.
문둥북춤은 가냘픈 손끝이 하늘거리어 멋과 흥을 불러일으키는 춤이 아니다.
한삼을 입어 손보다 더 아름답게 흐르는 선의 미를 얻어내고,
한삼의 긴 소매가 공간을 차고 날리고 외씨버선의 맵시 있는 발놀림을 염두에 둔 춤은
더욱 아니다.
문둥북춤은 절규의 춤이며 한탄의 춤이며 비애의 춤이다.
가냘픈 손끝의 움직임이 아니라, 온몸으로 떨며 추는 춤이다.
살점이 문드러지고 모두들 보는 것조차 질겁하며 피한다.
누가 문둥이의 비애를 안단 말인가.
천민 중에서도 가장 천민, 불행한 자 중에서 가장 불행한 자의 상징으로서
고성 오광대는 문둥탈을 표현하고 있다.
가슴에 얼마나 많은 한과 슬픔이 쌓였기에, 말 못할 사연이 뭉쳤기에
문둥 탈을 쓰고 춤을 추는 것일까.
덩기덕—덩더러러러—
쿵기덕—쿵더러러러—
두 손으로 땅바닥에 놓인 소고를 잡으려고 하지만,
손가락이 오그라붙어 잡지 못한다.
문둥이는 땅을 치며 통단한다.
슬픔의 끝에서 장단을 맞추고 눈물의 끝에서 소맷귀를 적신다.
소매로 눈물을 닦고 콧물을 닦는다.
두 번이나 소고를 잡으려다 실패한 문둥이는 더욱 소고를 잡고 싶다.
소고를 치며 춤이나 한 번 춰 보고 싶다.
어둠과 절망 속에서, 얼마나 구박을 받으며 저주와 한탄 속에서 살아온 나날인가.
문둥이는 슬픔에 목이 메인다.
“소고를 들어야지.”
문둥이는 굿거리장단에 춤을 추면서 땅바닥에 놓인 소고를 집어 들고 싶다.
‘덩기덕—덩더러러러—’ 굿거리장단에 맞춰 소고를 쳐 보고 싶다.
죽지 못해 살아온 질긴 목숨, 춤이라도 한 번 춰 보고 싶다.
문둥북춤은 대사가 없다. 혼자서 추는 춤이다.
한으로 응어리진 운명, 탄식의 인생을 어떻게 다 얘기하며 얘기해 본들 또 무슨 소용인가.
그래서 온몸 전체로 떨면서 춤을 춘다.
탄식의 끝에서 춤을 춘다.
팔을 한 번 휘저을 때마다 한숨이 하늘에 닿고,
발을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원망이 발자국마다 쌓인다.
“운명이란 뭐란 말인가.”
문둥북춤은 비애의 끝에서 추는 춤이다.
온몸으로 하늘과 땅을 저주하며 추는 춤이다.
마침내 문둥이는 소고를 집어든다.
덩기덕—덩더러러러—
쿵기덕—쿵더러러러—
굿거리장단이 빨라진다. 소고 채를 거꾸로 집어 들어 한 바퀴 돌려서 간신히 바로 잡는다.
소고를 들자, 흥이 솟구친다. 문둥이는 팔을 들어 하늘을 휘저으며 땅을 굴리며 춤을 춘다.
춤에 벌써 흥이 흐른다.
“에라, 모르겠다! 춤이나 춰 보자.”
굿거리장단은 어느덧 덧배기장단으로 바뀌고 있다.
덩—덩—덩더—쿵더—
가락의 호흡이 가빠지자, 문둥이의 춤사위는 신명으로 바뀌어진다.
문둥이가 치는 소고 가락이 ‘에라, 모르겠다!’ ‘에라, 모르겠다’ 이렇게 울리는 것 같다.
운명을 저주하고 한탄해 본들 무슨 소용인가. 죽으려 해도 죽을 수 없었던 목숨이 아닌가.
더 이상 저주받을 것조차, 비참해질 것조차 없다.
생명도 사랑도 소망도 다 팽개쳐 버린 지 오래다.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덩—덩—덩더—쿵더—
뭉둥북춤은 어느덧 무욕의 경지에 빠져든다. 저주도 한탄도 슬픔도 사라졌다.
문둥북춤은 무아지경에 빠진다. 어느덧 문둥이 자신도 문둥이임을 잊고 만다.
이제 더 바랄 것도 없다. 인생도, 소망도, 사랑도 다 던져 버린 지 오래다.
체념한 지 오래다.
문둥북춤은 체념의 끝에서 추는 춤이다.
무욕의 경지에서 자신을 잊는 춤이다.
그것은 한의 극치이며, 추(醜)를 미(美)로 승화시킨 해탈의 춤이 아닐까 한다.
덩—덩—덩더—쿵더—
덧배기 장단에 맞춰 춤추는 문둥이는 이제 문둥이가 아니다. 몸도 부자연스럽지 않다.
손과 다리도 떨리지 않는다.
팔을 휘저으며 소고를 치는 춤사위라든지, 발놀림이 경쾌하고 당당하기조차 하다.
문둥북춤은 종내는 흥의 극치감에 빠진다.
문둥북춤은 한의 넋풀이이며, 통한의 하소연으로 체념을 거쳐
무욕의 희열에 이르는 춤인 것이다.
덧배기장단에 문둥이의 덧배기춤이 벌어지면 ‘얼쑤!’ ‘좋다’
구경꾼들의 추임새가 더욱 흥을 돋군다.
고성 오광대의 문둥북춤을 보고 민중들은 한을 푼다.
여기에 한을 푸는 실꾸리가 있다.
마음에 겹겹이 쌓인 공감의 언어가 무언중에 서로의 가슴에 흘러서
관중들을 취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경상도에서 친한 사람을 오래간만에 만났을 때,
‘아이구, 문둥아!’라고 인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추(醜)에서 정을 느끼고, 정을 강조하는 데 추를 동원한다. 여기에 정의 미가 있다.
추를 애써 떨쳐 버리려 하지 않고 한 덩어리로 따뜻이 감싸 주려는 마음—
이것이 정에 약한 우리 민족의 끊을 수 없는 심성이 아닌가 한다.
문둥이를 미움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마음으로 이웃사촌쯤으로 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반가움이 ‘아이구, 문둥아!’로 표현되는 것이다.
문둥북춤을 보고 민중들은 자신의 불행과 슬픔을 잊고 위로받는다.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있다는 것만큼 큰 위로가 되는 것도 없는 법이다.
문둥북춤은 거리낌 없이 대담한 춤이다.
한(恨)의 넋풀이인 동시에 잠시 문둥이가 왜 절망과 한탄의 신음을 토해 보는 순간인 것이다.
나는 언젠가 병신춤의 명인인 공옥진 여사의 병신춤을 본 일이 있고,
‘밀양 백중놀이’에 나오는 병신춤을 구경한 일이 있다.
공옥진 여사가 추는 병신춤—이를테면 갖가지 곱사춤, 앉은뱅이 춤들을 보면,
그것이 슬프고 비참하다는 생각보다 오히려 웃음보가 터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관중들은 병신춤을 보고 박수를 치며 즐거워하곤 한다.
‘밀양 백중놀이’에 나오는 병신춤도 마찬가지다.
고성 오광대의 문둥북춤은 이와는 다르다.
너무 진지하고 애통스러워 처음엔 관중들조차 소름 끼치는 절망과
섬뜩스러운 추를 실감하는 데서 문둥북춤은 시작된다.
하늘을 바라보고 통탄하고 눈물을 닦을 때, 관중들은 자신의 슬픔을 달래고,
오그라 붙은 손으로 땅을 치고 콧물을 닦을 때, 가슴에 쌓인 한을 녹이는 것이다.
우리 민족에 있어서 한은 그대로 절망과 어둠이 아니고, 생명에 불을 지피는 불씨이다.
극한의 절망과 비애이니 운명 속에서도 그대로 주저앉을 수 없는 강한 생명력의
맥박이 돼 주는 것이 한임을 공감하게 된다.
고성 오광대의 문둥북춤은 극한의 절망을 맛보고 그 어둠을 벗어 버린 춤이다.
이것은 모든 욕망을 벗어 버린 데서 얻어진다.
참다운 예술의 세계도 이와 같은 것이 아닐까 한다.
문둥북춤의 기능인 P씨는 춤을 추고 나서 문둥탈을 벗으며 얼굴에 흐른 땀방울을 닦는다.
문둥북춤은 불과 5~7분밖에 걸리지 않지만, 한 번 추고 나면 온몸이 땀으로 젖는다.
온몸을 떨면서 추기 때문에 힘이 든다는 것이다. P씨는 소매 깃으로 눈시울을 닦는다.
“춤추면서 울었습니까?”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문둥북춤을 추면 너무 슬퍼서 울지 않으면 출 수 없는 춤이라는 얘기다.
문둥북춤은 가장 추한 춤인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춤이다.
문둥북춤은 가장 슬픈 춤인 동시에 신명의 춤이다.
추를 미로 승화시킨 춤이며 슬픔을 환희로 승화시킨 춤이다.
*주(註)-문둥북춤은 무형 문화재 제 7호인 고성 오광대(固城五廣大)의 제 5과장(科場) 중 제 1과장에 연희되는 춤이다. ‘고성 오광대’는 모두 5과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 1과장이 ‘문둥북춤’, 제 2과장 ‘오광대’, 제 3과장 ‘비비’, 제 4과장 ‘승무’, 제 5과장 ‘제밀주[小母]’로 구성되어 있다.
2013.07.05 13:25
2013.07.08 14:07
고성 오광대 양반춤도 감상해 보세요..
2013.07.08 15:06
여성무용가 박경랑의 "문둥북춤" 진주공연(2012년)
고성오광대 제1과장인 문둥북춤을 여성무용가 박경랑이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만든작품이다.
인간의 어떤 고통도 참고 견디면 끝내는 모든 것이 아름다움으로 승화할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목향선배님의 글을 좀 더 깊히있게 이해할 수 있는 동영상이다.
2013.07.09 12:13
한국의 춤은 한과 흥을 승화시킨 우리 조상들의 혼이 서려 있습니다.
김진홍선생의 <동래 한량춤>을 감상해 봅시다.
접부채를 펴 든 천년학(千年鶴)들이 펼치는 아름다운 율동미는
절로 어께춤을 나오게 합니다.
2013.07.12 11:38
<오늘도 이집 저집을 다니며 얻은 한끼의 식사를
나뭇 그늘에 앉아 손으로 집어 허기를 채운다.
한 움쿰 밥알을 거머쥐니
바릿대에 손가락 마디가 떨어져 나갔다.
그래도 먹어야만 모진 생명 죽는날까지
함께 하리라.
또 한 줌 밥알을 움켜잡으려니
둘째 손가락 마디가 바릿대에 떨어져 나갔다......>
이토록 문둥병의 비참함은 말로 표현키 어렵다.
목향은 밝은 시안(詩眼)으로 문둥북춤을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다. 문둥북춤과 함께 목향의 이 글은
우리의 가슴에 <덩기덕 덩더러러> 울려 퍼지고 있다.
2013.07.14 01:03
문장원류 동래한량춤
동래한량춤의 예능보유자 김진홍선생과 그 제자들이 펼치는 춤판은
한국전통춤의 아름다움과 율동미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뉴욕과 뉴저지에서 매년 열리는 가을 축제인 <추석맞이 대잔치>에
이런 분들을 초청해 행사를 했으면 얼마나 좋을고...
김진홍선생을 중심으로 펼치는 우리 전통춤의 멋을 느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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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누추한 묵향방에 오신 목향 선배님을 환영합니다.
이미 목향 정목일선배님의 글을 모신 적도 있지만
오늘 <문둥북춤>은 목마른 여름밤을 시원하게 적셔주는 소낙비 같습니다.
언제나 아름다운 수필로 독자들의 심정을 울려주는 목향선배님!
삶과 체험에서 뿜어내는 의식의 맑은 향기가 느껴 집니다.
어떻게 이런 혼의 글을 쓸 수 있을까.
참말로 멋진 수필입니다. 아니 수필시(隨筆詩)라 부르고 싶습니다.
읽어 가는 중에 한참이나 멍해져서 몇 번이나 또 읽고 또 읽고 합니다.
글은 그 사람이라고 합니다.< 文如其人>이라 하거늘
얼마나 수련하면 이런 글을 뽑아낼 수 있을가?
묵향선배님이 자랑스럽습니다.
건필하세요.
오늘 우리 묵필방이 참 빛납니다.
<고성오광대> 동영상을 찿아 올림니다.